-아라베스크
있잖아요
지나가는데 누가 말을 건다
어떤 집의 문 손잡이다
입 벌린 사자 아니고
여자다
과일 바구니를 이고 있는 여자
손잡이 장식
무거워요
이제 좀 내려놓고 싶어요
나에게 과일 하나를 준다
마침 나는 목이 마르다
과육은 부드럽고 희다
골목은 희고 정갈하고
이파리 하나 없다
어떤 집에는 부속물처럼
연못이 딸려 있다
송장헤엄물방개가 떠돈다
고요하고 깊은 물 속이다
헤엄물방개에
송장이라는 말을 붙이니
물은 더 고요한 것 같다
극도의 고요
있잖아요
문고리 속 여자가 또 나를 부른다
여자가 과일을 또 내준다
여자의 숨
좀 헐거워진 것 같다
다리를 곧추세운다
오른발을 딛고
왼쪽 다리를 뒤로 뻗는다
두 손을 벌린다
과일에서
덩굴들이 뻗어나온다
길고 가늘고 끝없는
*아라베스크arabesque
손바닥은 연못으로
손등은 하늘로
절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선 안된다
송장헤엄물방개처럼
고요를 답습한다
은행을 가다가
횡단보도에 서서
불신 지옥 앞에서
여자는 또 있잖아요
말을 건넨다
버려진 인형 앞에서
인형의 떨어진 눈 앞에서
아라베스크는
식물에서만 문양을 꺼낼 수 있다
인간과 동물
심지어 인형에게조차 안된다
이제 좀 쉴 수 있게
이 과일 좀 받아주세요
아랍 어떤 나라에선
인형 반입이 금지된다고 한다
머리를 떼면 갖고
들어갈 수도 있다지만
머리를 떼다니
끔찍도 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느덧 손잡이 속 여자가 나타나
과일 하나를 또 내준다
지칠 때마다 그 여자가 다가와
긴 팔 긴 다리에서 문양을 꺼내
아라베스크한다
다시 가보지는 않는다
그 골목 찾을 수 없다
문고리 속
여자가 여전히 과일 바구니를
이고 있을까봐
송장헤엄물방개처럼
극도로 고요한 골목
나는 답습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저도 모르게 그 여자의
동작을 따라한다
발꿈치를 들고
다리와 팔을 쭉 뻗어
휘청대지만 곧바르게
힐끔대던 교통보호대
노인도 같이
다리 울퉁불퉁 솟은 정맥도
연속무늬 문양으로
간식으로 챙겨온 후무사 자두도
머리 덜렁대는 버려진 인형도
문고리 속 그 여자가
주는 과일을 받을 때마다
헤엄물방개처럼
고요하게 답습한다
멈췄다고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길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쉘위댄시shall we dan詩, 연작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써야지. 춤추듯 시詩 한 켤레를. 토슈즈 없는
맨발로 발바닥이 벗겨지고 발가락이 툭 떨어지도록.
#쉘위댄스#폭염#기후행동#스텝#아라베스크#너의작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