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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색 공원

내면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

엽낙근근(葉落根根)

by 무공 김낙범

낙엽이 지는 계절

가을이 깊어지면서 공원의 길 위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쓸쓸한 풍경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나무의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잎을 버리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는 에너지를 뿌리로 보내고 생명을 지키는 길을 택합니다.

가을의 찬 기운, 숙살지기(肅殺之氣)는 그렇게 작용합니다.

엽낙근근(葉落根根), 잎이 떨어지면 뿌리가 깊어진다는 말. 자연의 이치이자,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때로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붙잡고 있는 것을 놓을 때, 우리는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포기할 것을 포기하는 순간,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내려놓음의 용기

우리는 늘 채우려 합니다. 더 많은 성과, 더 넓은 인맥, 더 화려한 스펙. 그러나 채우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정작 우리를 지탱하는 힘은 점점 소모됩니다.

나무가 잎을 떨구지 않고 점점 더 풍성한 잎을 자랑한다면 자신의 에너지를 모조리 소비하고 지치게 됩니다.

엽낙근근의 지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이 정말 자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가?"

때로는 화려한 외적 성취를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장의 시작입니다.


뿌리를 깊게 하는 시간

잎을 모두 떨군 나무는 앙상해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뿌리가 더 깊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그 성장이, 다음 봄을 준비합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그때 우리는 내면의 뿌리를 키웁니다.

실패를 겪거나, 목표를 이루지 못했거나, 주변의 시선이 차가울 때, 우리는 좌절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야말로 내면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독서를 하고, 필사를 하고, 성찰을 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시간. 겉으로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그 시간이 쌓여 더 알찬 사람을 만들어줍니다.


다시 꽃 피울 준비

엽낙근근의 진정한 의미는 포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준비입니다. 나무가 낙엽을 떨구는 것은 이제 그만 살자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려놓음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내면에 더 단단한 뿌리를 만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겨울을 견딘 나무가 봄에 가장 아름답게 꽃을 피우듯, 지금의 내려놓음은 미래의 더 큰 성취를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엽낙근근, 잎을 떨어뜨리는 고통으로 더욱 단단해지는 삶. 그것이 진정한 자기 계발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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