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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Apr 17. 2024

내 눈만은 가리지 마소서.

신을 믿지 않는 나다.



그럼에도 녹내장 검사를 받고 온 날이나, 검사 며칠 전, 혹은 시야결손으로 검은 장막이 갑작스레 눈앞에 드리울 때, 종교에 기대어 볼까 생각하며 기도하는 맘을 품는다.


태어나 눈에 뵈는 게 있었지만, 세상에 시선이 뜨이지 않았던 시절. 4.3 사건, 군사정부. 5.18 민주항쟁 등을 모르고 살았고, 눈이 뜨인 시절에도 가부장적인 아빠의 시선이 내 눈에 씌어 얼마나 많은 것을 보지 못했던가.





경제적 독립 후, 시사 관련 인물의 피처기사를 쓰던 직업 상 인터뷰한 대부분이 의원들이거나, 역사적 사건의 주요 인물들이었는데. 과거 배경부터 입법 이슈까지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며, 같은 국회 지붕 아래에 있는 사람도 의열이 가득한 사람이 있고, 자리보존을 위해 시간을 보내 국민을 딱하게 만드는 사람도 보았다.

짧은 사회생활이었지만 격렬한 인간들을 만나는 노동에서 사람에 대한 혜안을 익혔다 생각했었다.




그 혜안으로 남편을 골랐다 자부했는데, 이 인간을 고른 것에 대한 후회막급으로 보낸 몇 년 동안은 내 눈을 찌르고 싶었다. (지금은 다 늙어서 싸웠다 절교했다를 반복하다 드디어 찐 친구가 됐음을 밝혀둔다.)


그 후, 애 키우며 만나 정을 줬지만  뒤통수를 치던 몇몇 여인네들까지 사람을 보거나 세상을 알아가는데 얼마나 눈 뜬 장님처럼 살았었는지..



보는 눈이 참 병신 같다 느끼며 산 세월이었다.



그런데 이제 눈이 멀 수도 있다니.. 초월적 존재에 기대야 하나 매일 거울 속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보곤 한다.



거기에, 앞으로도 아이들의 결혼 같은 내 눈이 꼭 필요할 일들이 떠오를 때면 때로는 죽는 게 나을까 생각해 보다가도, 정말 눈이 멀기 직전에 다시 생각해 보자 마음을 다잡는다.(완전 눈이 멀면 죽음도 내 맘대로 안 되겠지 싶었다가, 이 세상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겪어내며 살고 있을 삶을 생각하면, 또 이것도 이겨내리라 싶기도 하고.)



이런 이유들로,

삶이 곤궁하다 느끼며 사는데

여러 경제지표들이 발표될 때나, 세금을 낼 때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소득이 높은 축에 속하는데, 이 또한 내게 암담함을 선사한다.



내가 세상을 사는 게 역경으로 느껴지는데, 나보다 낮은 소득에 속한 사람들이 장애를 갖거나, 병치레를 하게 되면 삶이 얼마나 허탈함과 어두컴컴함, 희망 없음, 절망적으로만 느껴질지 상상하니 암담해진다.


그런 암담함을 마주 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작은 기부나, 내 만족을 위한 선행들조차도, 눈으로 찾지 못해 선택하지 못할 수 있다 생각하니 겁이 난다.




매일 기사를 샅샅이 찾아보고, 정보수집을 하며 내 의식을 깨어있게 만들려 노력하는데도, 눈 찔리고 코 베인 듯 사는데 눈이 안 보이게 되면, 누가 내게 세상을 보는 눈이 되어 줄까 생각해 보느라 하루를 다 쓰기도 한다.




아는 이름을 다 갖다 넣어봐도, 누군 내 취향과 너무 다른 화려한 것만 좋아하고, 누군 이미 너무 아프고, 누군 너무 어리고, 누군 너무 멀리 살며 바쁘고.. 누군 돈만 밝히고.. 제격인 사람이 없다.

다시금 결론 내리니,

세상을 전달해 줄 시선이 오로지 나였음 싶다.



아.. 그러니..

매번 나빠지는 결과를 받는 정기검사를 이틀 앞둔 오늘 밤,

검사가 좀 남았던 지난번 글에서의 쿨한 새 중년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무작정 또 대상 없는 존재에게 기도한다.


내 눈만은 가리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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