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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Apr 13. 2024

치열했던 나와의 이별



잔잔한 것을 추구하는 바와 달리 감정이 요동치는 삶을 사는 편이다.


잔잔함을 위해 매일 수첩에 내일 해야 할 일들과 예상소요시간을 적고 예측가능한 변수들을 꼬리처럼 붙여 써 놓는다. 핸드폰의 알람은 덤쯤 된다. 당황하여 발을 동동거리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민한 사람의 특성상 잔잔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는 것 인지, 남들처럼 일반적인 일상을 보내는데 기민한 성격으로 일과를 파동으로 느끼며 사는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는 연쇄적 굴레 속에 살아왔다.


매일이 이렇다 보니, 내가 적은 수첩부터 내가 기록해 놓은 것으로부터 시작한 일상들이 담긴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되어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이 되었다.



추억이라 하기엔 거창한 그냥 내 기억의 잔상정도만 시각적으로 남아 있어도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다.


내겐 2006년도 남편과 처음 본 영화표와, 영수증, 아이 데리고 처음 한강에 갔을 때 썼던 돗자리, 아이들이 애정해 너덜 해진 공룡백과사전, 첫 아이가 긴 머리를 고수하다 생애 첫 단발머리를 선언할 때의 긴 말총머리, 둘째가 처음 캠핑 갔을 때 쓴 곰팡이 난 텐트, 포대기, 유착한 젖 데울 때 썼던 워머 같은 것들이 베란다 하나 가득이다. (배냇머리, 탯줄 뭐 이런 건 말해 뭐 하겠는가.)

거기에 최악으로 힘들면 금융치료를 통해 벗어나고자 하니 좁은 아파트, 침대 빼면 몸 하나 시원히 누일 공간조차 없다.


내 아이들은 집 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골동품 같은 물건들을 보면 “나보다 몇 살 많아요?”를 묻고 ‘어르신’이라며 대접해 준다.



제일 오래된 것은, 대학입학 때 샀던 코트나 졸업 때 입었던 정장 등이 있지만 아이들 추억까지 담긴 최고봉 어르신은 22년 전 내 첫 독립에 친정엄마가 사다 준 화장대 의자이다. 엄마 취향이 가득한 엔틱풍인데 당시엔 불만 가득이었지만, 15평 독립녀에겐 최상의 메이크업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이제는 다리가 완전히 부러졌지만 엄마가 사들고 들어오던 그 장면이 떠 올라 버리지 못했다.



아마도 난 시각적인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편인 듯하다. 유려했던 것들이 세월을 입어 진정한 내 것으로 변해가는데 그것을 간혹 꺼내 볼 때 삶의 충만함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이제 좀 버려보려 한다.

시각적인 추억을 정리하려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아이들의 사춘기이다. 조곤조곤 재잘재잘 대던 우리 집 저녁풍경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각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면 나와 함께이기보다는 혼자이고 싶어 한다.

빨리 크고야 말겠다고 발악하는 듯 느껴져 내심 서운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 방문을 노크하지만 날 반기는 건 서늘함뿐이다.

아이들 아빠는 성인으로 가는 과정에 지극히 잘 큰 결과일 뿐이라며 섭섭해하지 말라 위로하지만, 내 맘은 공허해지기 일쑤다.

아마도 나만 놓지 못하고 있는 내 만족을 위한 에로스인 것 같다. 내 생에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육아의 시간들을 놓아주고 새롭게 찾아온 중년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닳고 닳은 기억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이유를 꼽자면, 아직 장애 판정은 받지 않았지만 녹내장이 심하다. 코멕 맥카시의 ‘더 로드’에 지구의 종말을 갑자기 닥친 녹내장과 비유한 문장이 있는데, 겪어보니 종말 맞다!

차량 주행에는 아직 이상이 없으나 시야결손이 일어난 부분 때문에 주차로 벌써 수없이 주차 기둥을 손상시키며 차 감가상각에 일조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수단이 드라이브였는데 이마저 자중해야 하니 삶의 큰 테두리를 다시 정비해야겠다 여겨졌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엔 내 치열했던 가슴 한 조각씩 들어있다. 첫 이유식을 데웠던 초보엄마의 18년 된 전자레인지에는 많이도 아팠던 첫 아이가 아프지 않게 해 달라는 염원의 가슴 한 조각이 들었고, 아이들 한글 가르치며 머리 맞대고 찾아본 보리국어사전의 너덜너덜해진 표지에는 바르고 예쁜 말이 가득한 아이로 자라라는 소망 한 조각 들었다.




치열함이 배인 물건들을 버리는 대신 무엇을 담을까 고민해 보았다. 아직 정확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우선 사물을 시선으로 대하는 법 대신 촉감으로 마주하는 법을 익혀보려 한다. 그러면 훗날 아이들이 독립을 해도, 내 눈이 멀게 되더라도 기억을 오래 저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건, 엄마가 줬던 의자의 쿠션과 비슷한 촉감. 이건 첫째가 신었던 첫 신발과 닮은 질감.





분리수거인 오늘 난 저 의자의 쿠션과 부서진 나무다리를 눈 감고 한참 만져보았다.


22년 전 늦은 출근길, 신경질적으로 눈썹을 그리며 잠시나마 앉아있을 수 있게 해 주고, 몇 천 원 아낀다고 첫째의 앞머리를 집에서 자른다고 앉혔을 때, 머리카락 떨어지지 않게 씌운 보자기, 한 치도 남김없이 쏙 들어가 청소 걱정 없게 해 주고, 어제까지도 렌즈를 무서워하는 둘째의 드림렌즈를 끼울 때 둘째의 갈 곳 없는 손의 버팀목이 되어 주어 고맙다.



저 의자에 배었던 수많은 치열했던 순간들이제 안녕.

그리고 새로울 중년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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