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CONN 에콘 Jan 20. 2024

작별하지 않겠다.

mbti가 유행하지 않던, 혈액형으로만 성격을 판단하던 시절, 소심하고 쩨쩨한 A형이란 이유로 스스로 가둬놓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먼저 친구를 사귈 재간도 없었고, 다가오는 친구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 도무지 어려웠다. 헛소리 된소리하며 친한 척 겉도는 관계를 유지하거나, 오래된 친구들 몇몇만 만나는 형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16세, 내게 다가와 준 친구가 있다. 체육시간 전,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순간에 다가와 내 파란색 체크무늬 브라를 꼭 움켜쥐며 "어떻게 이렇게 작아?"라고 말했던 대각선에 앉은 친구였다.



한참 가슴이 자라야 할 시기에 그냥 유두만 가리고 있는 내 브라가 늘 불만이었지만 이렇게도 내 단점이라 생각한 부분을 말로, 시선으로, 손짓으로 지적한 친구는 처음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아빠를 암으로 일찍 잃은 그 친구와, 아빠의 바람으로 늘 아빠가 없는 듯 살아왔던 난, 그렇게 그냥 친구가 되었다.



아빠가 없는 공간에 홀로 우두커니 있었을 우리의 어린 시절이 닮은 것만 같아,

그 친구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 애의 친구는 내 친구가 되었고, 그 애의 친척은 내 친척이 되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나의 모든 것이 그 애의 것들로 들어차고, 내 사람은 다 그 아이의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입시도, 좌절도, 사랑도, 이별도, 결혼도, 육아도 같은 해, 같은 시간 겪었다.


너무 힘든 어느 지난 시절

"너 죽고 싶어? 말만 해. 같이 죽어 줄 거야."라던 그 아이가 30년 만에 사라졌다.


“사라졌다”…

물론 그 친구는 저 동네 언저리 살고 있어, 사라졌다란 말을 적는 게 겸연쩍지만, 물체나 현상의 자취가 없어졌다는 말로 해석하자면 ‘사라짐’이 맞는 거 같다.

 

무엇이 30년 넘은 우정에 사라짐을 놓았는가. 하는 질문에, 그 오래된, 오랜 세월이라 밖에 답을 하지 못 하겠다.


우린 너무 오래 알아왔고, 세월에 때 타는 모습을 지켜봤고, 각자가 다르게 아파하는 결혼생활을 겪고, 그냥 서로 실망했을 뿐이다.



만남, 안녕, 설렘 따위 말고

50 가까이 되니 작별이 더 손쉬운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기다려보려 한다.


그 아이와만은 ‘작별하지 않겠다’





작가의 이전글 난 ‘마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