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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May 09. 2024

‘낫’


낫은 기역자 모양으로 안쪽에 날을 댄 농기구이다.

깡시골 외갓집에 논 갈던 소가 있던 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 유년기를 보냈다.

농가 시골을 잘 모르는 요즘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 낫 놓고 기역자 모른다”란 속담은 친정어머니가 내 어리바리한 모습이 발동되면 장난스레 사용하셨던 말이다.



음…..

농기구들의 공통점은 행위를 하는 사람 쪽으로 위험한 날이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괭이, 호미, 고무래 등은 긁어내거나 후벼 파 농작물의 바탕을 만드는 일은 한다.



농기구 중 ‘낫’은 쓰임의 목적이 독특하다. 다른 것들은 농사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쓰이는데,



‘낫’은 좋은 농산물을 위해 잡초를 제거하거나, 수확을 위해 사용한다. 손아귀로 잡고 본인의 안쪽으로 칼날을 들이 밀어야만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이다.




‘자식 농사 잘 지었다’ 같이 육아를 농사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을 만나 괭이로 땅을 고르고, 호미로 땅을 파 아이를 심었다. 고무래로 중간중간 흩어지는 아이의 위태로운 순간을 긁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첫째 아이가 10대 후반, 이제껏 사용했던 다른 농기구들을 내려놓고, ‘낫’을 들었다.

18년간 종사한 작업의 결과물을 수확할 시간이라 느꼈다.









‘잘 익었다. 요 놈.’

오른손에 낫을 쥐고 왼 손에 아이를 잡았다.


어미란 농부의 맘이 급했다.



2년 전부터 유학을 이야기해 왔던 아이는 “유학을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엄마의 제약이야.”라 말했다.



신장병으로 오래 많이 아팠던 아이에게 매일 던진 내 질문은 똑같았다.

“밖에서 뭐 먹었니?”

“물 많이 마셨이?”

“언제 들어오니?”

“전화 왜 안 받았니? “

“혈뇨를 눌 수 있으니 피곤해선 안 되는데, 할 게 많이 남았니?”




잘 건사한 소중한 작물을 거둬드린다 생각했는데,

내 몸을 베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아이의 성인이란 수확물을 얻는 것이었다.

낫의 칼날이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잊었다.



성급했다. 더 여물어서 베었어야 할 것을… 줄기의 힘이 아직 여려,

쪼그려 앉은 내 다리만 베었다.

낫엔 피가 묻고, 아이는 위태롭게 휘청인다.  



“제약이라고? 제약이 싫어 유학을 가겠다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감히? “



17세 아이의 말을 주제넘은 행동이라 규정짓고 말았다. 17년 병시중 하던 내 노고가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에 아이를 향해 폭력을 담았다.



아이가 5세 이후 처음 “낳아주고 길러줘 고마워요.”란 말을 듣지 못 한 어버이날이 지났다.




훗날을 기약해야 할 수확물도 줄기가 꺾여 제대로 자랄지 의문이다.



그 수확물이 시들거나, 병충해를 맞은 농작물처럼 상품가치가 없어지면 땅에 내동댕이 쳐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낫으로 베다만 아이 사춘기의 모든 것들이 스러진다면 어찌해야 하나..

차라리 스러진 것들이 흙이 되어 내년 내 아이의 질료가 되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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