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내일 점심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나에게
퇴사 후 일을 하면서 무엇이 가장 어려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밥 혹은 식사 혹은 끼니
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도 힘든 것 중 하나이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선택의 문제였다. 점심시간이면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어디를 가야 줄이 짧을까를 고민하던 선택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에 문제에 가까워졌다.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않기에는 나의 식욕은 늘 왕성하고, 그렇다고 매 끼니를 요리하는 것에서 오는 귀찮음은 또 말로 다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하루 이틀 지나 반복이 되니 점심을 먹는 시간이 점점 불규칙적으로 변해갔다. 12시에 먹던 점심을 여러 가지 귀찮음을 핑계로 2시가 되고 3시가 되고. 그러다 보니 저녁식사도 불규칙적으로 변하고. 몸에서 그걸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소화 불량, 잦은 한 트림, 역도 성식도 염으로 나에게 마구 경고하였다. 더 이상 식사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하면 안 될 것이라고. 회사를 그만두고 운동량도 적어져 자연 소화(?)밖에 방법이 없는 몸뚱어리에 먹는 시간이라도 일정해달라며 안달복달 신호를 보내었다. 그리고 문뜩 조금 슬펐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무엇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요리가 귀찮다고 먹는 걸 게을리하다니. (그렇다고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름 우남씨(=우리 집에 사는 남자)와 합의를 하였다. 디지털 노마드의 덕목 중 하나는 건강이니 점심시간만은 지키자. 그리고 산책을 하자. 물론 일에 쫓기는 타이밍에는 이마저도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해보자. 지키는 척이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몸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당연히 매일 지켜질 리 없지만 산책의 횟수가 늘고, 밥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니 조금씩 한 트림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괜찮아지나 싶더니 몸에 밴 게으름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개발하다가 중간에 먹기가 애매해서, 덜 배고프니까, 날이 추워서, 비가 와서, 미세먼지가 많아서... 아쉽게도 세상에는 밥을 늦게 먹을 핑계와, 산책하지 못할 핑계가 수백 개 존재하였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하다. 문제적 식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알면서도 개선하지 못하는 의지박약의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다. 누군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꼭 말해줘야겠다. 점심을 꼬박꼬박 챙겨 먹을 자신 없으면 회사를 그만두지 마세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라서요-
그대의 내일 점심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