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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Jun 12. 2024

써리얼 벗 나이스

비현실적이지만 완벽한, 김보람

영화 '노팅힐'에서 'surreal but nice' 대사를 나누는 장면


Surreal but nice(비현실적이지만 완벽한).


영화 '노팅힐'에서 서점 주인인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가 영화배우인 '애나 스콧(줄리아 로버츠)'과 만나면서 건넨 말이다. 노팅힐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던 한 청년이 비버리힐즈에 살며 극진한 대접을 받는 스타와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감탄. 모든 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곱씹어 보자면 완벽 그 자체였던 하루에 대한 동경과 앞으로 다시 이 순간을 누릴 수 없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한 마디. 여운의 아쉬움에는 계속 함께이고 싶다는 소망도 담겨있다. 


이 대사는 이 글의 주인공인 내 친구 김보람이 운영하는 카페 이름이기도 하다. 


김보람은 20살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 처음 만났다. 볼이 통통하고, 짧고 노란 파마머리를 한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귀여움'을 장착한 아이였다. 그에 반해 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정확하게는 목소리보다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깔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디자인조형대 건물 5층에 위치한 과실에서 김보람이 웃으면 1층 입구에서도 소리가 귀에 박혔다. 믿기지 않겠지만 실화다. 짜릿한 웃음 데시벨이 5층에서 1층으로 내리꽂아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듣기 싫거나 거북하진 않다. 오히려 옆에 있는 사람까지 같이 웃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지녔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대학교 기숙사, 1315호였다. 1학년 때 방배정을 받으면 다른 학과 선배들과 섞어서 랜덤 배치가 되는데 전산의 오류인지 특이하게 1학년으로만 구성됐다. 디자인조형대 2명, 인문대 1명, 사회대 1명. 나는 사회대였고 김보람은 디자인조형대였다. 학과 특성상 과제가 많은 디자인과 학생이 2명이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간작업은 우리 방에서 진행됐고, 디자인과 다른 학생들까지 합류하면서 1315호는 그들만의 아지트가 됐다.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엉뚱한 기질을 타고난 것은 분명했다. 다른 점은 난 머릿속 상상으로 그쳤고, 김보람은 실행에 옮긴다는 것. 한 번은 학교 앞 식당 입구에 서 있는데 옆에 동기가 "저 사람 봐바"라고 이야기를 해서 보니 저 멀리 초록색 스타킹에 빨간색 짧은 원피스를 입은 복고풍 아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너무 놀라 "ㅋㅋㅋ 저 사람 미쳤나 봐"하는데 가까이 다가올수록 익숙한 실루엣이다. 그렇다. 김보람이었다. 복고파티를 하겠다며 그 사람 많은 곳을 누가 봐도 튀는 복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냥 그런 애였다. 


한 번은 주말에 행사 때문에 출근을 해야 해서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당일 행사가 끝나고 막바지 정리를 하는데 갑자기 김보람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강변터미널로 나와" 이 말만 남기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홀린 듯 터미널로 가자 김보람은 차표를 끊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힘들다고 징징 거리지 말고 힐링하러 가자며 경기도 안성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김보람 손에 이끌려 나는 난생처음 즉흥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꼽힌다. 이후에도 김보람은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어디로든 함께 가줬다. 


김보람과 떠난 안성 여행에서 나는 뻥튀기 아저씨 옆에 떨어진 튀밥을 주워 먹을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이런 김보람과 있다 보니 나도 변해갔다. 남들 눈치에 한껏 예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일단 저질러 보는 사람이 됐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구두를 신고 가다가 발이 아프면 맨발로 공원을 걷기도 하고, 궁금하거나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않는다. 맘보가 고얀 사람들 곁에 '착한 사람'으로 남아 억지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갉아먹는 사람과는 과감하게 멀어지는 용기도 생겼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다독여 주고, 더 힘차게 나의 길을 다듬도록 도와준 것은 김보람이었다. 




지금도 김보람과 통화를 할 때면 "야, 대박"이라고 운을 띄우며 시작한다. 일상에서 재밌는 일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이야기한다. 그렇게 한참을 깔깔 거리며 웃고 떠들다 보면 금세 1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뒤돌면 까먹을 법한 소소한 이야기들도 참 많은데 김보람과 수다를 떠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시트콤 주인공이 된다. 


대학교 졸업 후 김보람은 장사를 시작했다. 오랜 방황 끝에 회사를 선택한 나와 달리 김보람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그 과정에서 속을 긁는 사람도, 비웃는 사람도, 콩고물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후폭풍이 길지는 않았다. 아파하고 속상해하더라도 바로 털고 일어났다. 한 번은 김보람이 지인과 동업을 하려고 하길래 "그걸 어떻게 믿냐?"며 말렸는데, 그때 김보람은 "안되면 비싼 경험하는 거지"라며 자신을 믿었다. (이후 준비 단계에서 걱정의 시그널을 감지했었고, 반쯤 포기 상태에서 시작을 하긴 했다. 결국 그 동업은 실패로 끝났다.)


옆에서 보면 김보람은 여리고 왜소한 체형이지만 그 속에 단단한 내면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득하다. 가끔 본인의 계획을 신나게 읊어대는 걸 보고 있으면 '쟤는 어떻게 저렇게 긍정적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본인의 선택이나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도 않는다.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좌절이나 절망으로 이어지는 법이 없다. 말하는 것을 보면 세상 철부지 막내딸인데, 일하는 순간에는 어른스럽고 단호하다. (요즘에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끔 고민을 하는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행이 재빠르다.)


여전히 우리는 20살 시절처럼 신나고 재밌는 일에 가장 크게 반응한다. 그리고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만큼 상대가 약해질 수 있는 순간을 무시하고 외면하기도 한다.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 시련의 무게를 잘 견뎌내면 이후 한층 더 성장하고 단단해지리라는 믿음도 있다. 무엇보다 김보람이 나에게 그렇게 해줬기 때문에, 나 역시 김보람에게 같은 지지를 보낸다. 


나이가 들수록 단단한 내면과 자아를 가진 친구가 주위에 있다는 게 내심 고맙기도 하다. 무엇보다 삶을 살아가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탄탄한 둥지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가끔은 내가 쉬러 가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내가 그 둥지가 되어주기도 하고. "너만 생각해라" "네가 좋으면 됐다"라는 한 마디를 서로에게 건네면 그 순간 드리웠던 어둠이 한풀 꺾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김보람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나는 이해가 안 되는 게..."로 시작하는 한마디. 아마 최근에 열심히 보고 있는 '연애남매'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또 맥락 없이 시작하는 대화로 우리는 1시간을 떠들겠지. 그 시간만큼은 걱정도, 고민도, 불안함도 없다. 주어가 없어도 통하는 존재로, 설명이나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함께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나의 'Surreal but nice'는 다른 무엇도 아닌 김보람 그 자체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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