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미 Feb 16. 2022

사돈댁의 김치

엄마의 김치가 가고, 사돈댁의 김치가 왔다. 

엄마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가슴이 아팠던 순간은, 김치를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건 다 정리해도 김치는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냉장고에서 만 2년 동안 보관을 했다. 하얗게 쌓인 곰팡이들로 인해 더 이상 냉장고에 둘 수가 없을 때, 그제야 김치를 버렸다. 하얀 곰팡이는 걷어내고 먹을 수 있지 않냐고 우겨보기도 했으나 외숙모가 시커멓게 변한 바닥의 곰팡이를 보여주면서 당장 버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엄마의 김치가 사라지고 텅 빈 냉장고에는 엄마가 담가놓은 매실청 한 병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평소 밥을 먹을 때 김치를 꼭 챙기는 전형적인 한식 파다. 그래서 집에는 김치가 끊이지 않았고, 엄마가 식당을 시작한 뒤에는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백김치 등등 다양한 종류의 김치들이 식탁 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어느 날에는 5가지 반찬 모두가 김치여서 역대급이라며 엄마와 깔깔 거리기도 했었더랬다. 엄마의 김치는 그만큼 소중했다. 당연히 김치통을 비울 때의 허탈함과 허전함은 생각보다 컸다. 어쩌면 같은 경험에서는 누구나 그럴 것이다. 


올케와 통화를 하며 엄마의 김치를 드디어 버렸다고 이야기하니 올케는 대번 "잘했다"라고 했다. 썩고 있는 김치를 끌어안고 매일 슬퍼하기보다 싹 비우고 새롭게 채우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이다. 어머니 이제 편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올케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인 나와는 다른 마음인 것도 맞겠지만 분명한 건 올케는 나를 위한 말이었다는 것. 어쩌면 그 마음이 와닿아 꽤 위로가 되었다. 


택배로 도착한 사돈댁의 김장김치. 새지 말라고 포장이 겹겹으로 쌓여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갑자기 집으로 택배 하나가 날아왔다. 충북 주소로 찍힌 택배였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보니 어디서 많이 봤는데. 문득 올케 아버지, 그러니까 사돈 어르신의 성함이라는 것이 뇌리를 스쳤다. 놀라 상자를 열어보니 김치가 잔뜩 들어 있었다. 며칠 전 김장하러 친정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마 그 김치인 듯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놀라 있기를 잠시, 정신을 차리고 올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케, 이거 웬 김치야?"


"엄마가 고모 드리라고 따로 싸주셨는데 가지러 못 내려올 것 같아서 택배로 보냈어요"


상황을 들어보니 사돈댁에서 김장을 하면서 나에게 줄 김치까지 챙겨주셨다고 한다. 평소 식사 잘 못 챙겨도 김치 하나 있으면 밥 한 숟갈 뜰 수 있다고 말이다결혼이라는 제도로 생긴 가족이지만 멀다면 멀고, 남이라면 남인 존재인데. 불현듯 나타난 택배 상자 하나가 눈물샘을 자극했다. 평소 연락할 일은 없지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지체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김치 너무 잘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진짜 맛있어요!"


"아유 사돈처녀 입맛에 맞을진 모르겠네. 잘 익혔다가 먹어요." 


"네, 이걸로 김치찜도 해 먹고 찌개도 해 먹고 흰밥에도 먹고 그럴게요."


"맛있게 먹어주면 너무 좋지."


약속드린 대로 나는 김치찜도 해 먹고, 찌개도 해 먹고, 흰쌀밥과 먹기도 했다. 13쪽이나 되는 많은 양의 김치라 일부는 냉동실에 바로 얼렸다가 꺼내 먹기도 했다. 


이후로 매년 사돈댁에서는 김장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김치를 보내 주신다. 감사한 마음에 김치를 받으면 나도 선물을 보내 드리곤 하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터라 농산물은 의미가 없어 소고기나 수산물로 챙긴다. 그리고 요즘은 김치와 상관없이 생각날 때마다 서울에서 핫하거나 시골에서 보기 힘든 것들을 찾아서 챙겨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이번 설에는 매거진 'GQ'에서 내놓은 막걸리 세트를 사다 드렸는데 가족들과 맛있게 드셨다고 연락이 왔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사실 사돈댁의 김치를 먹으면 이상하게 배가 아프다. 동생 부부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먹는 김치 때문에 알게 됐다. 아마 매운 걸 잘 못 먹는 내게 사돈댁의 김치가 꽤 자극적인 듯하다. 평소에도 올케가 요리할 때 "오늘 친정 고춧가루 썼어요"라고 말해줄 정도이기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사돈댁의 김치로 식사를 했다.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매운맛이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사돈댁의 김치가 익숙해지는 만큼, 우리의 신선한 관계들도 무르익는다. 엄마의 부재가 아쉽지만, 엄마의 부재로 인해 생긴 또 다른 관계. 어쩌면 채워지지 않을 텅 빈 마음에 가족이 들어섰다. 가끔 올케를 통해 김치 대신에 잔소리도 보내주시는 든든한 내 편이, 나에게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2시, 집 밖에 갇혀버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