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랑자가 될지라도
불현듯 찾아온 슬럼프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내 삶에 스며들었다.
딱히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사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내 몸속에 있는 에너지가 몽땅 증발해 버린 것 같다.
여름이라, 더위를 먹은 건가, 싶기도 한데 그저 그런 류의 문제는 아닌 듯 보인다.
생각해보면 참 발랄하게 살아온 37년이었다.
누구보다 에너제틱한 나날을 보내왔으니 한 번쯤 건전지를 갈아 낄 법하다고 생각이 든다.
예전 같았으면 '또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구나'하고 절망했을 테지만, 제법 길게 살아온 나는 지금 '오, 내가 또 한 번 성장하려는 거구나'하며 만끽 중이다. (많이 컸지.)
이 나이에도 성장을 논한다는 것이 어쩌면 부질없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100살의 나이에 지금과 같은 방황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는 또다시 기쁘게 즐길 자신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쉬어가는 페이지가 백지로 쓰인다고 할지언정 그다음 페이지를 다시 가득 채우면 되니 그다지 두려움은 없다.
이것이 나이를 들어감에 오는 여유, 짬에서 오는 바이브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정의한 것들에 대한 고찰이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많이 안다고 여겼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좋다고 했던, 기뻐했던,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과연 나의 내면에서도 같게 느끼는 것인가 생각했을 때 의문이 든다.
나로 정의한 것들에 대한 부정, 그리고 부정하는 스스로를 외면하다가 인정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느끼는 허탈함과 허무함.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는 내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밖으로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 채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흔이라는 전환점을 앞둔 두려움일 수도 있고, 삼십 대를 홀랑 날려 버린 아쉬움일 수도 있고, 이제 멀어져 버린 이십 대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이유가 어찌 됐든 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인생의 방랑자가 된 모양새지만 더 늦지 않게 이런 순간이 찾아왔음에 감사하며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를 찾는 여정이 얼마나 오래될지 알 수는 없겠지만,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나에 대한 철학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인생에서 값진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방황인지, 아니면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 나다운 답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