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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Oct 04. 2022

금쪽같은 우리 선생님

세상 문제를 이해하려면 시스템에 주목하라

  18살,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EBS 다큐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금쪽같은 내 새끼 선생님 버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는 큰 꿈을 실어 주었다. 스타 학원 강사보다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꿈. 계기는 좀 길지만 이렇다.     

  프로그램에 교육 전문가는 금쪽이(?) 선생님들을 바꾸기 위해 미션을 제시했다. “조례 때 학생들과 한 명씩 눈인사하기, 교단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수업시간에 학생들 이름 적어도 5명은 부르기.” 미션을 받은 선생님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다. “교육 전문가라 특별한 교수법을 말해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어서 놀랐다.”


   오은영 박사가 부모에게 늘 강조했듯이 모든 문제의 열쇠는 탁월한 기술이 아닌 좋은 관계다. 이 프로그램은 교사의 행복은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내게 알려줬다. 18살의 내가 교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다름 아닌 “관계” 때문이다. 어떤 30번 문제를 던져주어도 완벽히 풀어내는 스타 강사보다 수학이 어렵다고 낑낑대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느 노랫말처럼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저기 오름 직한 동산이 되며 내 가는 곳만 비추기보다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는.”사람 말이다. 물론 스타 강사도 충분히 학생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이야 가능할 수 있지만 18살인 나에겐 변화된 선생님들이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춰졌다. 그분들이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을 본 것이다.


  18살 고등학생은 어느덧 그토록 바라던 교사가 되었다. 내 첫 근무지는 자사고였다. 중학생 때 전교 1등만을 다퉜던 고1 학생들과 처음으로 교직에 임하는 선생님이 만났으니 수업의 열기는 엄청났다. 수업이 끝나면 질문을 하러 오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24명의 학생 모두 내가 하는 말에 경청했다. 그곳에서 난 마치 스타 강사가 된 기분이었다.


  자사고를 떠나 일반고에서의 첫 수업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절반을 넘었다. 휴대폰 게임을 하는 학생도 있었고 심지어 이어폰을 끼며 드라마를 보는 학생도 있었다. 처음엔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내 수업이 이토록 재미가 없을까? 내가 잘 가르치지 못하니까 학생들이 잠을 자는 게 분명하다.”라며 나를 깎아내리거나 “난 못 가르치는 게 아니야. 수업을 안 듣는 너희가 문제인 거지.”라고 학생들을 탓했다.


  더 무서웠던 건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점점 두려워진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학생과 눈을 맞추려고 노력하기보다 수업을 듣는 앞자리 학생들에게만 눈을 맞췄다. 학생들의 눈보다 정수리를 보는 일이 잦아졌고 점점 힘이 빠졌다. 이럴 바에야 교사를 그만두고 학원에서 일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인가. 생각해보면 교실엔 다양한 학생들이 모인다. 수학을 아예 포기한 학생. 예체능 실기를 준비하는 학생. 말할 수 없는 아픔 때문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는 학생 등등. 획일화된 교육과정은 다양한 학생들을 똑같이 가르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이 문제를 내 문제 혹은 학생의 문제라는 개인의 잘못으로 돌렸다. 세상 문제를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죄를 추궁하기보다 시스템에 주목하라는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의 말도 생각난다.




  오늘 문득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18살 때 보았던 다큐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다큐를 보며 난 다짐했다. 학생들이 자거나 게임을 하면 무작정 다그치기보다 나와 눈을 맞춰주지 않아 섭섭했다고 말해주기. 적어도 학생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주기. 가끔 내가 쓴 글 읽어주기. 수학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에 진짜 도움이 되는 것들 알려주기.


무엇보다 그들의 삶에 금쪽같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길 말이다.



개구리 선생님의 슬기로운 교직생활 #01



메일 : bju1313@naver.com
인스타 : @writerb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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