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 국어시간에 '시경험쓰기'를 하다가 발견한 학생의 글에서 마음이 선득했다. 가슴이 아팠으나 티를 내면 안 되었다.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나는 같은 인간동료로서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할까. 가만가만 조심히 생각해본 일을 적었다.
글쓰기 소재로 시집에서 ‘목줄’을 고른 아이가 있었다. 국어수업 시간에 시를 하나 고르고 내용과 관련된 자기 경험을 수필로 쓰는 활동이었다. 열네 살 아이가 감응한 시가 ‘목줄’인 걸 보고 교사인 내 마음은 선득했다.
목줄이 그려 주는 테두리, 밖으로 나간 적 없는 목숨이 묶여 있다. 어제보다 더 자란 목숨이 자랄수록 숨이 더 조여 오는 목숨이, 달려야 할 길에 묶여 있다
(박성우, ‘목줄’ 중에서)
시의 내용과 자기 경험을 연결시켜보라고 말해 놓고 너무 잘 연결된 글을 읽게 되니 아이러니하게도 기뻐할 수 없었다. 사연의 무게에 비해 글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자기 연민을 드러내지 않은 단단한 문장이 아이에겐 갑옷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내 가슴이 저릿했을 뿐 아이 글은 거침없고 도도했다. 학습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했는데 칭찬하기 난감해진 건 처음이었다. 글을 쓴 수영(가명)이는 또래에 비해 체구는 작지만 눈빛이 깊고, 중학생 특유의 발랄함 없이 늘 차분했다. 평온한 차분함과는 색깔이 달랐다. 성숙한 사춘기 여자아이의 감성 때문에 그럴 거라는 내 짐작은 안일했다.
시키지 않아도 잘 하는 자신에게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더 잘 하게 되기를 바랐고, 어린 맘에 어른들이 시키는 것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믿었고 그게 자기도 모르게 목줄로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수영이가 다섯 살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엄마와 둘이 살게 되었다. 부모가 이혼하자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엄마는 이혼 이후 술과 담배를 달고 살았고 수영이를 자주 때렸다. 그러다 밤이면 엄마에겐 너밖에 없다고 했다. (외)할머니를 찾아가 하소연하면 할머니와 엄마가 싸웠고 엄마는 자주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다그치면서도 수영이한테 엄마를 이해하라고 말하셨다.
“5학년 때 내 생일이 다가올 무렵, 엄마가 죽었다. 나는 내 수중에 있는 엄마의 흔적들을 모조리 버렸다. 엄마를 닮았다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엄마의 영정 사진을 들고 추모공원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도 나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액자를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다는 것뿐이었다. 엄마와는 달리 상식적이고 친절하신 엄마의 친구 분이 나에게 울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왜 우냐고 대답했다. 울 필요가 없었다. 그런 사람을 위해 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중략) 외할머니.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챙겨야 한다는 것이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끊어진 목줄이 다시 생기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엄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불쌍한 애’로 보는 것은 수학의 정석보다도 싫었다. 가난한 할머니와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미치도록 역겨웠다. 마치 내가 자기들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인간이라는 것처럼.” (수영이 글에서)
할머니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며 공부공부 강조하셨고, 머리 좋은 수영이에 대한 높은 기대로 이어져 압박을 가했다. 죽어라 공부해서 성적을 올려도 수학이 백 점이 아니라고 할머니께 혼이 났다. 2학기 기말시험에서 다섯 과목 이상 만점을 받으면 할머니가 자기 학업 관련 일에 신경을 끄기로 약속을 받고는 목줄 하나가 헐거워진 느낌이었다. ‘타인의 주제넘은 관심에 환멸을 느껴 참견할 틈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내 세계를 확장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소설쓰기에 몰두했다’고 수영이는 자신의 자서전에 썼다. 자서전 쓰기 수업은 수영이 3학년 때에 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30세에 과거를 돌아보며 자서전을 쓴다는 가정을 하고 진행했다. 살아온 날을 성찰하고 현재 시점에서 재의미화한 다음 미래를 설계해보는 12차시 수업이었다. 중3이니까 진로 탐색도 되고 맞춤이었다. 수영이는 ‘암울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소설을 써왔다고 한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얘길 듣고 나는 청소년 공모전 정보를 자주 물어다주었다. 실제 공모전에서는 뽑히지 않았지만 자서전에는 고3 2학기에 인터넷 플랫폼에 작품을 연재하고 반응이 좋아 운영진 측에서 정식 연재 제의를 받아 글을 썼고 대학엔 가지 않고 소설쓰기를 계속하여 인기 많은 작가가 되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독신주의자 수영이가 거기 있었다. 일러스트도 그리고 게임 시나리오도 쓰며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에 있는 자신만의 아늑한 세계’ 속에서 ‘(현실)도피 생활’을 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30세의 수영. 자서전을 읽다보면 애들이 내 인생 선배 같다.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을 중학교 때 이미 했으며 허무맹랑, 휘황찬란한 미래가 아닌 꽤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그렸다. 이쯤 되면 내가 뭘 가르치기는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수영이에겐 알차게 현실 도피생활 하는 것이 암울해 보이는 현재를 살아내는 현명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배웠다. 소설이 수영에게 건전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이혼하면서 ‘망설임 없이 자기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하고 떠난 아빠’와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다가 어린 자신을 남기고 죽은 엄마’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어른들을 믿지 못하고 인류애를 잃어버렸다’는 수영이가 선택한 사는 길이었다. 상담을 하다 아이들이 겪은 일을 들으면 그 나이에 견뎌내기엔 혹독했겠다 싶지만 그들에겐 비나 눈처럼 피할 도리는 없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게 나를 더 어쩔 줄 모르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린 시절 상처를 안고 가난한 조부모 밑에서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도 뚜벅뚜벅 오늘을 살게 하는 내면의 힘을 찾아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잘 찾아내 거울처럼 비춰주어 아이들이 자기를 믿고 그 믿음으로 스스로를 든든하게 느끼도록 돕고 싶었다. 그러면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이걸 바탕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자기를 위해 뭐라도 더 잘 해보고 싶어질 것이라 믿었다.
고통을 몸으로 치열하게 겪어낸 아이가 오래 고심하고 골몰해서 얻어낸 통찰이라면 현실 도피라 표현했더라도 그건 세상의 잣대로 잘했다, 못했다 말할 수 없는 삶이다. 스스로를 책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그렇게 키워주고 싶어 하는 ‘자기 삶의 주체로 당당하게 사는 태도’가 아닌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