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 학생의 좌절에 구경꾼 자리에 있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재작년 그러니까 2017년의 일이다. 학교엔 청력이 매우 좋지 않은 남학생 C가 있었다. 특수학급에 속하지 않았으니 장애 등급을 받은 건 아니었다. C의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우리에게 부탁을 하나 하셨다. C는 청력이 매우 약해서 선생님의 입모양을 보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니 그 애의 정면을 보고 이야기를 해주십사 했다. 나는 그 학년 수업을 들어가지는 않아서 어떻게 수업이 이루어졌는지 알지는 못했고 그 뒤로 C에 대한 얘기도 듣지 못해서 잊고 있었다. 장애가 있는 경우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도 많고 그 과정에서 사건화가 되어 작은 학교인 우리의 경우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C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C가 갈등 없이 잘 지내는 학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C가 중3이 되어 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하자 문제가 생겼다. C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은 아주 좋은 편이었는데 키도 훤칠하게 크고 잘 생겼으며 성격은 차분하고 성실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는 착실한 학생이었다. 성적도 괜찮아서 아이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데 전혀 결격사유가 없었다. C는 그림을 좋아하여 예고에 진학하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학교로부터 입학 불가 통보를 받았다. C가 자기네 학교의 수업에 원활히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자기네는 그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아이는 중학교 때에도 별문제 없이 학교생활을 했었는데 대체 어떤 수업에 어떻게 참여할 수 없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학교에 항의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분명치 않게 이유로 느껴지는 같은 입장만 다시 전달해왔다. 답변을 받는 과정에서 아이는 눈에 띄게 침울해했고 세상에 대한 실망을 많이 표현했다고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속상해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에 대해서는 안타깝긴 하지만 담담한 마음이 더 컸고 속상해하는 담임 선생님만 신경 쓰였다. 아이는 졸업 때까지 내가 교실에서 직접 만난 학생이 아니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힘들 때마다 마음을 나누던 절친 동료였으니까.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2월 말 경기도에서 충남으로 내려가 마당 있는 집을 짓고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 댁에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집 첫째 아들은 수학을 너무 싫어했는데 학교는 수학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학교까지 싫어졌다했다. 그림을 좋아하고 특히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높은 첫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학교에 가는 대신 여행학교 샨티에 진학하기로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하지 않느냐며 아들을 설득하려던 부모며 아이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듣고 아이가 한 말은 “어른들이 나한테 해줄 말은 이것밖에 없는 거야?”였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당위성에 의문을 던지는 아이에게 어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양하지 못했나 보다.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메마른 논거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아이에겐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걸 확인한 부모는 도리 없이 아이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걱정 끝에 입학시킨 샨티 학교의 입학 오리엔테이션에서 부모는 뜻밖의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첫째 아들 한 명 때문에 학교에서는 관련 전공을 한 미술 선생님을 추가 고용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선생님의 첫째 아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교 부적응 학생이었으나 전혀 장애 없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데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가 학생을 개별 존재로 하나하나 소중하게 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참 좋았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으면서 두 아이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심난해졌다. 책이란 게 마음을 흔들었을 때 진짜가 되는 건 맞는데 C의 일이 직접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이후로 취한 나의 태도를 떠올리게 되자 부끄러웠고 무엇보다 어리석게 느껴졌다.
부끄러움의 정체는 내가 나 자신을 속 편한 구경꾼 자리에 놓으면서부터 정하는 경계와 어정쩡한 태도, 나와 친했던 선생님을 위로하면서 함께 가져간 아이에 대한 면죄부 같은 것들을 맞닥뜨리자 밝혀졌다. 부끄러웠다는 표현을 통해 또다시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이제 와서 떠오른 C의 이야기는 그 아이에겐 인생이 걸린 일인데 나는 그냥 글쓰기 소재로 삼고 만 건 아닌가 하는 찝찝한 미안함이 사과할 상대도 없는 이 마당에 주체할 수 없는 곤란함으로 남았다.
마음에 얹혀서 어쩔 줄 모르겠는 건 나의 안일함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C가 가고 싶어 한 학교는 사립학교였다. 공립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을 정해진 기준 밖의 이유로 학교장이 임의로 입학을 불허하는 데도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한 경우조차 속수무책인 것이 사립학교의 현주소다.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는 사립학교의 문제는 내가 공립에 근무한다고 해서 남의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실감하였다.
원인을 묻고 따지고 해결책을 알아내고 내가 할 일, 같이 할 일, 같이 하도록 내가 챙길 일 등을 생각하자면 일이 커지고 책임감으로 무겁다. ‘책 읽고 나서 후회와 반성과 다짐은 쉽게 할 수 있어. 게다가 나중에 후회나 하고 있었다는 걸 다시 후회하게 될 나약함이 아닐까. 그럼 어떡하지?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재촉하는 목소리에 쫓긴다.
다 지나가 아무도 없는 이 자리에서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았다. 부질없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C’를 만나게 될 것에 대비할 의무 정도는 나에게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C야, 귀가 안 들리는 게 네 잘못은 아니야. 그런 너를 탓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우울하게 있는 것보단 나을 거야.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이 함께 도울게. 법원에 그 학교의 부당함에 대해 판결해달라고 해보자. 그렇게 해서 이겼던 사례를 선생님이 알고 있어. 네가 공부할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 그런 학교는 잘못한 거야.”
인생의 긴 여정에서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시점은 출발선에서 얼마 가지 않은 길이다. 그런 아이가 너무 일찍 느껴버린 좌절감에 대해 감히 가늠할 수 없으면서도 무겁고 안타깝다.
‘장애를 가진 내가 잘못된 삶이 아니라는 사실, 실격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나머지 바로 그 장애를 가진 자신을 보듬고 돌보는 일에, 사랑하는 일에 종종 실패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305쪽)
C가 무엇보다 우선으로 자기 사랑에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