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아이들에게 안전한가?
카톡이 왔다. 10시가 넘었고 일요일 밤이었다. 난 침대 위에 누워 월요일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이라 폰을 확인할까 말까 망설였다.
“선생님, 내일 상담 좀 해주실 수 있어요?”
미진(가명)이다. 내일 1교시로 상담 시간을 정했는데 석연치 않아 일어나 앉았다. 혹시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진이가 작년 담임과 집안 문제로, 정확히는 아빠의 폭력 때문에 힘들어 상담하는 걸 몇 번 옆에서 봤기 때문이다. 아무도 등교하지 않은 이른 시간에 교무실에서 담임 앞에 움츠리고 앉아 훌쩍이는 모습을 안쓰러이 지켜봤던 적이 있다. 조심스레 물어보니 예상이 맞았다. 1학기 중엔 아무 말이 없기에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았더니 그냥 말을 안 했을 뿐이었다. 동생이 많이 맞았다며 보내 온 사진 속 아이 허벅지는 엉망이었다. 푸르다 못해 새카매진 허벅지와 종아리. 아이 의사를 확인하고 나는 즉시 인터넷으로 경찰서에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미진이는 중3 여학생으로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수업 시간엔 늘 허리를 펴고 바르게 앉아 교사의 눈을 보며 집중하는 몇 안 되는 학생이다. 1학년 때부터 반장을 3년 내리 맡았는데 친구에게나 선생님에게 신임이 높았다. 질병 지각 한번 없는 개근에 교칙을 잘 지키는 반듯한 성정을 가졌으면서도 남녀 가리지 않고 관계가 좋으며 갈등 중재를 잘한다. 게시판과 공용 사물을 알아서 정리하고 쓰레기도 자주 주워 늘 교실을 쾌적하게 유지한다. 학급 행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 모두가 신나게 즐길 수 있도록 바탕을 깔고 장보기나 뒷정리처럼 귀찮거나 궂은일은 도맡아 한다. 이런 아이를 때릴 일이 뭐가 있지 싶었다. 미진이는 학년 전체에서 화장 안 하는 단 두 명 중 하나였다. 가방을 뒤져 틴트가 나왔을 때 아빠에게 맞았다. 핸드폰을 정해진 시간 이상 쓰거나 동생과 싸웠을 때도, 학교 끝나고 집에 오지 않고 친구네서 저녁을 먹어도, 매일 영어 단어와 한자를 외우게 했는데 그걸 다 못 해도 맞았다. 맞아야 하는 이유는 아빠만 정했고 불쑥 생겼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 맞는 일일지 몰라 불안했다. 편안한 날이 없었다. 때리지 말고 말로 하시라고 얘기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미진의 아빠는 그러면 말을 듣지 않고 버릇 나빠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미진이 얘기를 들으면 이 집에서 아이들이 하루하루 공포 속에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동생이 핸드폰으로 낯선 사람과 연락해서 만난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아빠는 안방에 데리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5시간이 넘게 때렸고 집에 있던 새엄마는 평소처럼 말리지 않았다 했다. 아동학대를 받던 아이들은 가까운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른들이 아이 편에서 행동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부모 손에 맞아 죽었다는 언론 보도를 여러 번 보아왔다. 미진이가 그렇게 될까봐 너무 불안했다. 내가 맡은 아이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어 내게도 절실한 문제로 다가왔다.
신고 다음날, 지역 경찰서의 아동청소년과에서 여경과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가 함께 학교에 방문하기로 했다. 자매를 면담한 후 애들 의사에 따라 쉼터로 임시 격리 조치를 한다고 했다. 오전에 면담을 하더니 오후엔 애들과 집으로 동행해서 짐 싸서 쉼터로 바로 옮겼다. 생각보다 진행이 빨라 놀랐다. 나는 수업 없는 시간에 S(장소명)에 사는 친엄마와 통화해서 엄마가 아이들을 데려가 살 마음과 여건이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친엄마는 작년에 애들이 아빠의 폭력이 견디기 힘들다 했을 땐 아빠 말 잘 듣고 좀 참아보자고 했다. 신고하면 경찰이 조사하러 나올 텐데 아빠가 신고했다고 애들을 더 혼낼까봐 두려워 그때도 미진이가 담임을 통해 신고했는데 경찰조사는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미진이 친엄마는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어떻게 할지를 두려움 섞어 물어왔다. 엄마가 결정 하셔야 한다고 말했으나 이야기는 진전되지 않고, 아이들을 데려갔을 때 아빠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두려움과 아이들을 그냥 둘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생각해보라고 전화를 끊고 다시 통화를 해도 같은 말을 오래 반복했다. 답답해서 결국 나 같으면 데려가겠다고 작년에 그냥 두었는데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아이들을 S로 데려 가겠다며 내일 온다고 했다. 재혼해서 함께 사는 분도 흔쾌히 동의했다면서.
애들이 짐 싸서 쉼터로 간 걸 퇴근해서 알게 된 아빠가 자기에게 말도 없이 아이를 데려갔다고 격앙되어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 일찍 학교로 찾아온다고 했다. 폭력적인 아빠가 학교에 와서 나에게 어떻게 나올지 몰라 무서웠다. 교감 선생님과 학생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미진이 동생이 맞은 사진을 본 교감 선생님은 두 말 없이 자신이 아빠를 만나 얘기하겠다고 했다. 관리자가 학부모를 만나 일 처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 너무 고맙고 든든했다. 아빠는 학교에 서운함을 한참 토로했고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애들을 때려서 가르치겠다는 방법은 틀린 게 아니냐는 교감의 말에 동의하더라고 전해 들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S의 기관과 연락해서 미진이가 갈 학교에 비밀전학을 의뢰해주었다. 비밀 전학은 아빠가 어느 학교로 아이가 전학했는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생활기록부의 기록에 바뀐 주소지를 남기지 않는 전학이다. 보통 가정폭력으로 보호자와 격리가 필요한 경우 전학할 학교에 비밀전학을 요청한다. 진행 속도도 빠르고 기관끼리 연계가 잘 되어있었다. 미진이는 15년 간 정들었던 동네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못 하고 도망치듯 떠났다.
올해 여름 S에 여행간 김에 미진이와 연락해서 만났는데 낯선 곳에 적응도 잘 하고 친구도 금방 사귀어 고등학교에 가서 반장이 되었다고 했다. 중3 2학기에 전학을 간 건데 그 사이 남자친구도 여럿 갈아치웠고 이제는 공부하려고 연애 안 하겠다며 웃었다. 아이들의 적응력은 놀랍다고 생각하면서 보내길 잘했구나 싶다. 다행히 미진이 아빠는 친엄마에게 욕은 좀 했다지만 S에까지 좇아가진 않았다.
가끔 인스타그램에서 펜션 겸 공방 카페를 하는 엄마 가게랑 풍광 좋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미진이랑 동생 사진이 올라오는 걸 본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