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의 공포

S가 눈에 밟힌다, '어울림의 공포' 속에 놓인 아이를 생각하며

by 햇살

“난 이게 제일 싫어.”


S가 말을 뱉고 휙 뒤돌아 팀을 짜던 무리에서부터 멀리로 걸어가 버렸다. 나는 당황했다. 학교스포츠클럽의 피구·발야구반을 맡은 첫 수업 날의 일이다. 피구 경기를 위해 3개 반이 섞인 여학생들을 2개의 팀으로 나눠야 했다. 애들에게 물어봐서 피구를 잘 하는 2명을 나오라고 했다. 그 아이들을 각 팀 대표로 두고 둘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전체가 둘로 나뉠 때까지 차례로 자기 팀 선수로 하고 싶은 아이를 데려오는 중이었다. 두 팀의 실력이 팽팽해야 긴장감이 유지되고 아이들이 끝까지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 팀을 짜려고 했다. 아직 어느 팀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뽑히기를 기다렸을 S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이게 제일 싫다고 하며 피구 경기에서 빠졌다. 나는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순간 아차 싶었다. ‘S가 선택되지 않고 끝까지 남은 경험이 많았나보나. 그랬다면 기다리면서 초조하고 자존심 상하거나 친구들이 원망스럽고 섭섭했을 수 있겠다. 에구, 내가 경솔했군.’ 순식간에 지나간 생각이다. 내가 좀 더 사려 깊고 친절한 선생님이었다면 좇아가 얼른 사과하고 그 아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대신 다음 스포츠 시간부터는 각 반 출석 번호의 짝수끼리, 홀수끼리 한 팀을 만들어 경기를 했다. 승패가 뻔해 아이들이 시시해 하고 첫날처럼 열정적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적극적인 애들은 여전히 열심히 경기에 참여했고 누군가 마음 다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본격적으로 교과 수업을 하면서 보니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짝을 바꾸는 6주에 한번씩 S의 짝이 되는 남학생에게 남자아이들은 낄낄대며 박수치는 몸짓으로 놀렸다. S는 노골적인 무례함을 규칙적으로 겪었다.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매번 같았다. 그건 공부를 잘하면서도 심성이 곱고 모두에게 신임을 얻는 한 남학생과 짝이 되었을 때이다. 그렇다고 그 남학생에게 S와 계속 짝을 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학교가 한 학년 3-4개 학급으로 전교생 300명도 안 되는 작은 규모라 아이들은 바로 옆 초등학교에서 전원 같은 중학교로 올라가 9년을 같이 다닌다. '쟤랑 4년 연속 같은 반에 있었어요'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한번 생긴 관계의 골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오히려 굳어져 가는 것을 눈앞에서 무력하게 보아왔던 시간이 떠올랐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데 ‘어울림의 공포’는 그림자가 짙다. 아이들은 매일 단짝으로 붙어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그런 비극이 자신에게 닥칠까봐 혼자 외롭게 지내는 친구에게 마음이 쓰여도 손 내밀지 않는다. 왕따랑 친구한다는 이유로 왕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찰싹 붙어 지내지 않고도 느슨한 관계로 살아도 큰 일 나지 않는데... 중고생 때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라고 여겨지는 시기이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S가 씩씩대며 아이들이 자기 말 무시해서 기분 나쁘다고 교무실에 오거나 모둠 아이들이 S때문에 힘들다고 자리를 바꿔달라며 항의하러 오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 있었다. 토론을 하거나 모둠이 힘을 합쳐 점수를 얻는 활동을 하는 교과 시간이 끝나면 자주 그랬다. S가 참여를 안 해서 자기들 점수가 깎인다는 거다. S는 아이들의 무시나 구박에 맘을 상해서 또는 아이들이 큰소리로 떠들거나 욕설을 사용하는 게 듣기 너무 싫다며 하소연하러 왔다. 나는 그때마다 감정을 받아주고 아이들 마음에 여유를 찾으면 같이 절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합의안을 만들면 잘 지켜보자고 격려하며 교실로 돌려보냈다.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 교사가 제시하는 과제가 다양한 아이들이 협동해야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경쟁적이어서 뒤떨어지거나 느린 아이들은 방해가 되는 종류는 아니었을까 고민했다. 수업 나눔 모임에서 이것을 안건으로 올려 논의했으나 해당 교사가 소신에 따른 논리를 갖고 있어 협의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자존심 상해하면서 말을 꺼낸 나는 난감해졌다. 모둠활동 갈등의 고비를 어찌어찌 넘기는 중 고단함은 쌓여갔고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어서 아이에겐 미안하고 스스로는 깝깝했다.

S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방송에 출연했다 한다. 중2 3월초 상담 때 그 반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로부터 직접 듣고 학년부장이자 옆 반 담임인 나에게 전해주었다. 집에서 할머니를 때리는 일, 또래와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일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어머니가 신청한 모양인데 방송 이후에도 자문위원인 정신과 의사에게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었다. 방송 중엔 각종 전문가가 투입되고 아이들에게도 집중 관심을 받아 출연 경험은 만족스러웠던 모양인데 그 경험이 오히려 이후 학급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에게 기대로 작용해서 S의 어머니는 내게 전화해서 학교에 실망이나 원망을 표현하는 일이 잦았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S를 잘 알기 때문에, 소리에 민감해서 짜증을 내거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우길 때 그러려니 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지만 하루 종일 S에게 다가가 말을 걸거나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는 친구가 없는 상황도 그러려니 했다. 변화를 시도하는 건 학년마다 바뀌는 선생님 쪽이었고 아이들은 소용없는 일이라며 뭔가 하려고 들지 않았다. S는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있었다. 수업 중에는 노트를 꺼내 수업과 관계없이 그림을 그린다. 집중하라고 지적을 받으면 노트를 넣었다가 한참 후 다시 보면 어느새 그 노트를 꺼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스포츠클럽에선 친구들이 피구를 할 때 자기는 배구를 하고 싶다며 나에게 공을 받아달라고 오는 등 아이들과 겉돌았다. 다양한 종류로 벽을 트고 마음을 여는 활동을 시도해 봐도 당사자들이 그럴 마음이 없는 데에는 도리가 없었다.

5월 1박 야영을 가느라 같이 잘 방을 정할 때에도 아이들이 S와 같은 방에 자기 싫어해서 한바탕 소동을 겪었고, S가 9시 이전엔 자야하고 시끄러우면 잠에 들 수 없어 짜증이 극에 달하기 때문에 잘 잘 수 있도록 다른 애들을 달래 양해를 구하고 S에게도 동의를 구해 결국 혼자 방 하나를 쓰며 잤다. 모처럼 야영 와서 될 수 있으면 잠 안자고 왁자지껄 흥겹게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충족해야 했고 S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해야 해서 나는 ‘미션 임파서블’을 찍는 심정이었다. 나와 우리 학년 선생님 두 분은 큰 충돌 없이 학기를 마치고 얼른 방학이 왔으면 하며 무사히 지나간 하루를 달력에 X표 하며 버텼다.

“S는 이제 포기한 거예요.”

중3 수학여행에 S가 가기 싫다고 했다는 말을 전하니 엄마가 답했던 말이 맴돈다. S는 그즈음 자주 아파서 토하거나 현기증을 호소했기 때문에 많이 걸어 다녀야 하는 수학여행에 데리고 가기엔 걱정과 부담이 컸다. 엄마는 중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는 마지막 추억인데 본인이 따라 다니더라도 보내겠다 했다.

평소에 S는 자주 복통을 호소했고 소리에 민감하여 옆집 개 짖는 소리에 잠을 설쳐 아침에 지각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2학기 들어 아파서 결석하는 날이 늘어갔다. S의 어머니는 한의원과 대학병원에서 다 검사를 해 봤는데 병명은 길어서 기억이 안 나지만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게 핵심이었다. 장기간 치료를 요한다고 질병 휴학에 대해 의논하면서 어머니의 반응은 점점 격해졌는데 처음엔 어쩜 친구가 아파서 3일째 결석을 했는데 반 아이들 중 전화 한 통 하는 애가 없다며 심하지 않느냐고 하다가, S의 면역계 문제는 심리적인 게 분명하다, 그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오랜 기간 스트레스가 쌓여서 오는 병이다 속상해서 미치겠다, 애가 이렇게 될 때까지 학교는 뭐하고 있었냐며 울부짖듯 소리치셨다. 우리 애가 S고 내가 엄마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S엄마의 마음이 너무도 이해되었다. 나는 속상하고 안타깝고 죄의식에 잔뜩 쪼그라들어 공감도 제대로 못해드리고 ‘에구 그러게 말이에요. 속상하셔서 어째요.’ 하는 말만 겨우 되뇌었다. 그즈음 사람이 느끼는 소외감이 실제 신체 통증과 같다는 글을 보았던 나는 병의 원인에 관한 S엄마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대한 속상한 마음을 공감하려 노력했지만 깊은 우물 밑바닥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장기 결석이 두 달을 넘어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작성하는 시기가 왔다.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S를 생각해서 엄마는 서울에 있는 특성화고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에 원서를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성적이 매우 안 좋아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합격했다.


담임반 애들이 고등학교에 가고 나서 특히 S 생각이 많이 났다. 잘 지내는지, 병 휴학을 했는지 자꾸 눈에 밟히는데 연락이라도 해봐야겠다 싶다. 아이에게 카톡을 보내놓고 답을 기다린다.


표지그림 출처: I-Scream 쌤 블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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