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곤란을 겪는 여자의 몸은 어떻게 돌봐야하나
남고에 근무한 첫해의 일이다. 생리량이 너무 많아 한 시간에 두 번은 생리대를 갈아야 하는 나는 생리 둘째 날이 수업 많은 날에 걸리는 게 제일 난감했다. 수업은 50분이고 내 상태라면 수업 중간에 생리대를 한번 갈아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바지에 생리혈이 샜다. 나는 교탁에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고 서서 아무 일 없는 척 수업하다가 끝종 치자마자 누가 볼 새라 교무실로 튀어갔다. 웃옷으로 엉덩이를 가리고 공강 시간에 바지를 사러 학교 근처 옷집에 바쁘게 다녀와서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어디에 옷집이 있는지 몰라 동네 사는 선생님까지 대동하고 갔던 당황스런 경험이다. 생리 보건휴가라는 게 있었지만 반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니 부담스러워 사용하긴 힘들었다. 양 많은 날이 주말에 걸리기만 바라면서 그때그때를 넘겼다. 수업 중 곤란을 겪는 여자인 교사의 몸은 어떻게 돌봐야 할까?
나는 평생 생리를 540번 했다. 초경이 초등 6학년 때부터니까 지금까지 34년간 했고 주기가 23일로 한번에 5일 넘게 한다. 계산을 해보니 ‘7년 반 동안 매일’ 피를 흘리고 있었던 셈이다. 비중이 상당한데 그 대우는 상당했을까? 생리대 광고에서 생리혈은 파란색으로 표현한다. 헌혈 공익광고나 드라마, 영화 속 수술 장면에서는 피를 붉은색 그대로 드러낸다. 여자가 외계인도 아니고, 피를 파란색으로 드러내는 결정 밑에는 감추고 싶거나 혐오의 심리가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생리대를 사러 가면 요청하지 않아도 여직원이든 남직원이든 검정 봉투에 따로 넣어준다. 직원 교육 매뉴얼에 있는 걸까. ‘생리대는 가려야 한다, 드러내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의학계나 보건 분야에서 월경(생리)로 인해 겪는 몸의 고통을 줄이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가. 고개를 젓게 된다. 여자라면 생리 전 증후군과 생리 중 불편함을 경험하게 되고 때로는 일상생활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내 경우 생리 일주일 전부터 몸이 여기저기 쿡쿡 쑤시고 저리다. 기분이 다운되고 찌뿌듯하다. 중요한 시험이나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자리를 앞두고는 생리 날과 겹칠까 봐 불안하고 걱정된다. 생리를 시작하면 이번엔 통증이 문제다. 심한 사람은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하고 하루 종일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늘 허리와 배가 쿡쿡 쑤시고 아팠다. 체해서 토하거나 몸이 차가워지면서 설사를 자주 했다. 음부 근처가 칼로 찌르는 듯 뜨끔뜨끔했다. 몸을 움직일 때와 걸을 때마다 울컥울컥 떨어져 내리는 핏덩어리가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 신경이 쓰여 집중력이 떨어졌고 몸살처럼 아파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일터에서 사람들은 어디가 아파도 몸을 가눌 정도면 출근해서 평소처럼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픈 사람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아픈데 쉬지도 못하고 일하면 서럽기도 하다. 여기에 여자라서 생리통까지 겹쳐있다. 예고된 고통이 평생 반복된다는 점에서 더 서럽다. 생리만 놓고 생각하면 여자인 게 너무 싫었다. 출산 능력은 여자만의 선물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선물은커녕 저주 같았다. 범인은 따로 있는데 출산하는 몸을 가진 여자라서 문제라 생각했었다.
아이 낳고 몇 년 후부터 급격히 많아진 생리량은 그후 5년간 심했다. 나는 생리 주기가 23일로 한 달에 두 번 할 경우도 있는데 양이 제일 많은 생리 둘째 날엔 한 시간에 초대형 울트라 생리대를 2번 갈아야 한다. 그런데도 병원에 가볼 생각을 못 하고 ‘그때 며칠만’ 그러고 마니까 대충 참고 넘어갔다. 늘 그러니 잘 돌볼 수도 있었는데 늘 그러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알고 보니 빈혈이 심했다. 아이 감기 때문에 동네 가정의학과에 간 날,
"애도 애지만 엄마가 검사 한번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안색을 보니 빈혈이 심해 보이네요."
의사의 권유로 검사를 하니 정상 수치가 12인데 나는 8 이었다. 생리량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했다. 적어도 10 이상으로 올려놓고 철분제를 먹어야 한다며 철분주사를 맞으라 했다. 이 정도면 오후엔 엄청 피곤했을 거라고, 그냥 두면 심장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저녁에 피곤해서 실신하듯 쓰러지는 건 운동을 안 해서 내 체력이 약해진 탓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날 바로 링거를 맞았다. 시작한 지 27년 만에 생리를 이유로 한 첫 진료였다.
만 40세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해에는 의사 상담 서비스가 있었다. 그때도 빈혈이 계속됐다. 의사는 자궁에 혹이 있거나 뇌 쪽 문제일 수 있으니 산부인과나 신경외과에 정밀검사를 하라고 권했다. 덜 무서운 산부인과에 먼저 갔다. 검사 결과 자궁 내 혹이 있는데 위치가 좋지 않아 생리 때 지혈이 잘 안되어 양이 많은 거라고 했다. 왜 그동안은 알아볼 생각을 못 했을까?
“자궁을 적출하거나 혹을 떼는 수술을 하거나 선택하세요. 근데 혹이 위치가 안 좋아서 수술이 한 번에 안 되고 여러 번에 걸쳐 할 수도 있어요. 그러고도 깔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궁을 적출하면... 부작용은 없나요?”
“아이 더 낳을 건가요?”
“아니요.”
“그러면 뭐~ 없어도 그만이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자궁은 필요 없는 장기인가?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데 어떤 게 없어지면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선뜻 내키지 않아 병원을 옮겨 다시 진단을 받았다. 옮긴 병원 의사는 수술 후 당일 퇴원해도 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거기서 혹 제거 수술을 했고 한 번에 깔끔하게 됐다. 내 몸을 아껴주고 싶어 병가를 내고 보약도 먹었다. 처음 병원에서 말한 대로 자궁을 들어냈다면 어땠을까. 전 병원 의사가 여자였는데 같은 여자로서 자궁 없애는 걸 여드름 짜내는 것쯤으로 취급하는 게 섭섭하고 미웠다.
수술 후 생리 량이 전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많았고 생리통도 비슷했다. 허리는 뻑적지근하고 생리 끝 무렵에는 생리대에 살이 쓸려 아팠다. 천 생리대를 쓰면 덜 하다고 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허리가 덜 아팠고 유해 생리대 걱정이 없었다. 썩지 않는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아 양심의 가책이 덜어졌다.
2017년. 생리컵(월경 컵이라 불러야 한다고 알고 있다.)을 알게 되었다. 2018년 1월, 식약처에서 첫 수입 허가를 했다. 외국엔 이미 널리 퍼져 간편한 생리 기간을 보낸 지 오래라는데 우린 생리대 회사의 반대로 수입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화가 났다. 미국산 쇠고기는 뇌에 구멍 뚫릴 위험이 있다고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해도 잘만 수입하더니만 돈 때문에 여자들이야 고생을 하건 말건 뒷짐 지고 있었다니. 그간 천 생리대 빨아 쓰던 수고로움과 외출하거나 여행 갈 때 짐이 확 줄었다. 생리혈 덩어리가 뚝뚝 떨어져 나오는 불쾌한 느낌이 사라진 게 강력한 메리트고 허리 통증도 사라졌다. 하루 두 번 만 갈면 된다. 경제적 이득도 크다. 유효기간은 영구적이지만 보통 2년을 쓰라 하니 한 달에 1회로 치면 한 번 생리에 1,600원 정도가 든다. 생리대의 가격과 비교해보면 무지 싸다.
최근엔 생리대 광고도 달라졌다고 하고, 생리대 이외의 대안이 모색되기 시작했으며 여성의 몸 돌보기에 여성 스스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이제 몸 고생을 더 이상 참지 말았으면 한다. 있는 걸 가리거나 대충 참고 넘어갔더니 좋아진 게 없었다.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몸과 고통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말하고, 의사들에게 생리통을 줄일 방법을 연구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내 몸의 주인은 나이고 세상의 절반은 여자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월경을 하고 여자는 못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중략) 지체 높은 정치가들의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의회는 국립 월경불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한다.”(글로리아 스타이넘 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