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쪽, 혼자, 뚜벅이 여행 첫날

19호실로 가다 체험여행

by 햇살

어찌어찌하여 혼자 오게 된 여행. 혼자는 첨이다. 뜻하지 않게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 체험 여행이 됐다.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은 무얼까?

음식에 비유한다면 혼행은 후지 차, 같이여행은 레몬에이드다. 물을 끓여 큰 그릇에 옮겨 알맞게 식히고 차가 우러날 때까지 천천히 구수하고 담백한 맛으로 먹는 차처럼 혼자여행은 속도가 느려도 된다. 내 속도로 다닌다. 물리적 속도뿐 아니라 마음도 느리게 흐른다. 차의 맛처럼 심심한 담백함을 즐길 수 있다. 같이 여행은 톡 쏘는 청량감의 레몬에이드처럼 만나면 바로 신나고 즐겁고 사람 수만큼 다채롭다. 차가운 에이드를 쭉 빨아들였을 때 온몸에 시원함이 좍 퍼지듯이 깔깔대며 왕수다를 떨었을 때의 시원함은 최고다.

대한민국에서 여자 혼자 여행을 하려면 숙소가 중요하다. 가장 우선 안전해야 한다. 그렇다고 별 다섯 호텔로 가자니 돈이 없다. 이럴 땐 좋은 친구와 검색의 부지런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

어디든 숙소와 갈 곳, 맛집을 물으면 양질의 데이터가 척척 나오는 사람이 곁에 있어 도움을 요청했다. 성산 쪽 가려고 한다 하니 '플레이스 제주 캠프'를 추천한다. 결과 대만족.


마침 이벤트 특가 중이라 평소의 30퍼센트 가격!

조식 포함 5만 원이면 산일출봉 뷰의 방을 얻을 수 있고 6번 자면 1박 공짜인 도장쿠폰을 주었다. 숙소도 커피 쿠폰 같은 걸 할 수 있구나 신선했다. 여긴 혼자라도 즐길 거리가 많다. 아침에 요가도 할 수 있고(만원을 내야 한다. 요가소년 틀어놓고 침대에서 그냥 했다.), 낮에 '슬로 여행' 신청해서 근처 걷기를 할 수도 있는데(그냥 다녀오면 되지 돈 내고 여럿이 갈 필요가...있을 수도)
밤에 용눈이오름에 가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이건 한번 가보려고 한다. 혼자 컴컴한데 돌아다니긴 무서우니까.
일요일에 '술 읽어주는 늑대'도 있다. 칵테일 만드는 걸 가르쳐준단다. 요건 한번 해볼까 싶다. 궁금해서. 35000원을 내야 한다. 비싼가?
토요일마다 장도 선다. 예쁜 것이 많았다.



떠나는 날, 공항 가는 길이 밀리면 안 되니까 일치감치 떠난 아침. 조로이 도착하여 3시간이나 남았다.


별로 할 것도 없었으므로 출국장에도 일찌감치 들어가서 팔자 좋게 캐리어에 다리를 올리고 <다가오는 말들>을 마저 읽기로 했다.



집에서 나온 시간이 9시 50분. 비행기는 13시 35분에 출발했는데 도착은 3시가 넘어서 했다. 공항 앞에서 급행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데 소요시간이 한 시간 20분 정도. 도착하니 오후 4시 반 정도. 휘유~가까운 제주인데도 하루 종일 이동만 한 느낌. 지친다.


드디어 플레이스제주캠프 도착

방에서 보이는 뷰~ 침대에 누워 성산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숙소 앞 찻길이 있어서 문을 열면 약간 소음이 있지만 가성비 갑이다.


방에서 내다 본 풍경
1-2인실 깔끔한 내 방. 둘은 좀 좁을 듯

벽에 외국 작가의 그림들이 붙어 있다. 뽀송한 침구가 기분 좋게 한다.


돌아오는 길 호랑호랑인가 하는 펜션 겸 카페가 있어 들러 보았다. 광치기 해변을 향해 의자들이 좌악 놓여 있어서 저기 차 한 잔 마시며 책 읽다가 바다 보다가 한량처럼 지내기 딱 좋게 생겼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한번 들러볼까나? (가장 싼 커피 5천 원임)



저녁은 여행자 티가 물씬 나게 pub에서 치맥으로 했다. 숙소 옆 건물에 있어 편했고 맛도 좋았다. 토요일엔 공연이 있어 자리 예약을 안 하니 앉을 곳이 없을 지경


혼자 왔고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술병 들고 산책에 나섰다. 나서보니 마침 올레 1코스!

물이 참으로 맑다.

숙소 밤 풍경.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면 흥분된다.


그러나 혼자 흥분을 어쩔 수는 없어 방에 돌아와 차분히 후기를 쓴다.


혼자 여행은 책으로 말하면 시집. 같이 여행은 만화책이다. 혼자서는 생각을 하게 되고 주변을 찬찬히 관찰하게 되며 문학적 낭만이 있다. 같이 여행은 만화책처럼 재밌고 가볍고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혼자여행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렵게 하는 것은 SNS다. 계속 여기저기 사진을 보내고 소감을 안부를 주고받다 보면 외롭진 않지만 혼자 있는 게 있는 게 아니라서 취지가 충분히 살지 않는다.


내일은 어디 가서 뭘 할까 궁리해보다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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