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과 시낭독회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내내 기다리던 첫 위트앤시니컬 시 전문 책방 나들이라 가지 말까 하는 내 목소리와 조금 갈등하다 그냥 나섰다. 혜화에 도착해서 곧 후회했다. 바람까지 세게 불어서 메시 재질 운동화 앞코가 젖었다. 왜 나는 미리 정해 놓으면 취소를 못 할까?
이번 시 낭독회에 신청한 이유는 구현우라는 알지 못하던 젊은 시인이지만 유튜브 검색해보니 목소리가 좋아서이다.
시작 전 근처에서 밥 먹기 적당한 후보지를 물색하다가 최종 ‘오드리D’ 와 ’호호식당‘으로 좁혔다. 토요일 저녁이라 붐빌까 봐 브레이크타임이 끝날 시간 5시에 늦지 않으려고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최종 목적지로 정한 이탈리안 식당 오드리D에 오후 4시 40분에 도착했다. 비 오는 처마 밑에 서서 기다렸다. 세상에서 제일 긴 20분. 오픈 시간이 되니 주인이 친절히 맞아주고 디저트도 줘서 기분 좋게 먹은 데다 재밌는 구경을 하게 됐다(고 기대했다)
식당을 검색할 때 소개팅 맛집이라고 적혀 있더니만 정말 여기서 소개팅을 하는 게 아닌가. 십여 평이 될까 말까 한 작은 공간에 자리가 가로 세로로 딱 4세트 배치되어 있는데 나와 소개팅 남녀뿐이라 민망하게도 모든 대화가 낱낱이 들리는 상황이었다. 마침 내 귀 건강이 좋지 않아 소리가 울리는 상태라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자기소개를 끝낸 둘은 남자 쪽이 주로 대화를 이끌었다. 하는 일을 한 마디씩 요약하고는 서로의 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는지 좋아하는 음식 얘기하는 거 같더니 호박, 버섯 등 재료 얘기로 옮겼다. 소개팅에서 식 재료 얘기라니 요리사 모임도 아니고 조금 웃겼다. 이내 대화는 뚝 끊겼다. 옆에서 듣는 사람도 긴장하게 되는 침묵의 십여 초. 머릿속이 얼마나 분주했을까. 다른 소재를 찾아 더듬거리는 듯하다 뚝 끊기기를 서너 번 하더니. 여자에게 공을 넘기려는 듯 “개발자 일은 어떤 거에요? 조금 설명해줄 수 있나요?” (여자가 자기소개할 때 무슨 개발자라고 했다) 서술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했는데도 여자는 답이 짧았다. 남자가 맘에 안 드나?
“근데 인기 많으실 거 같아요” 남자는 뜬금포로 여자를 칭찬한다. 이번에도 여자는 우물우물하더니 침묵. 마음에 안 드는 게 분명해.
두 마디 이상을 이어가지 못하고 끊기기를 반복하는 처음 만난 남녀의 대화가 만들어낸 어색한 공기가 세발짝 떨어진 내 자리로 자꾸 넘어왔다. 안타까워서 합석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였으나 생각조차 오지랖. 나중에 이런 공기 속에 소개팅했던 게 다 추억이겠지만 간만에 젊은이들 소개팅이나 엿들어보면 재밌겠다고 구미를 당겼는데 어렵게 찾은 식당을 즐기지도 못하고 나와야 했다. 시낭독회 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책 읽다 가려고 두 시간 넘게 검색해서 고른 ’오드리D‘ 였는데...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해서 후식을 먹으며 소개팅 듣기를 견뎌보다 말고 목적지인 위트앤시니컬로 향했다. 커플은 공통의 화제를 잘 찾았을까?
시낭독회 컨셉트는 ‘시인의 죽음’이라고 했다. ‘시시알콜’이라는 술 먹으며 시 읽는 팟캐스트 방송에 업로드할 예정으로 진행된다고 안내했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손목 날에 글씨를 문신한 팔로 마이크를 든 ‘능청’이란 필명의 젊은 남자였는데 말끝을 끼끼끼끼 요괴같은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게 재밌었다. 팟캐스트 진행자답게 능숙하게 질문과 답변 사이를 이어갔다.
능청 옆에 구현우 시인이 앉았고 테이블을 달리 해서 꿀다라는 눈이 예쁜 소설가가, 그 옆 풍문이라는 역시 갸름한 미인형의 젊은이가 앉았는데 능청과 부부 사이랬다. 부부라는 말을 듣고 내 안에 뭉탱이로 궁금증과 아쉬움이 스쳐갔다. ‘시(詩)’를 공통분모로 어떻게 만났을까? 둘에게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영화라도 한 편 펼쳐질 것만 같은 상상의 기쁨과 동시에 시라는 예술 세계가 부부의 일상생활 속에서 빛나기보다는 마모될 것 같은 예감에서 오는 나만의 아쉬움이다. 생활이 예술을 마모시킬 거라는 게 남편과는 진지하게 책 얘기, 영화 얘기가 잘 안 되는 결혼 이십육년차 유부녀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참석한 독자들 잘 보이라고 줄느런히 자리에 앉아 아까 소개팅 자리의 어색함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팝콘을 튕기듯 유쾌한 분위기로 대화했고, 단 한 장의 큐시트를 놓고도 유려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개팅은 서로 호감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어정쩡한 사이의 둘이 공통의 화제를 더듬더듬 찾아 여기저기 쿡쿡 찔러보는 서툰 분위기라면 시 낭독회는 충분히 친하다는 강점 때문에 진행자로 섭외된 친구 셋이 모여 가장 좋아하고 잘 아는 시와 친구 시인에 대해 신나게 수다를 떠는 분위기라 대조가 극명했다.
낭송회에는 어떤 사람들이 왔을까?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시작 전에 잠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좌석은 네 줄씩 다섯 칸으로 세팅되어 있었는데 맨 앞줄은 비었고 십여 명 정도가 채웠고 주로 여자에 남자는 두 명이 있었다. 이삼십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주류였다. 시인이 낭독할 때는 모두 시집으로 눈을 향하고 진행자가 이야기할 때는 호감 어린 웃음을 보내며 열심히 듣는 분위기였다.
‘시인이 죽었다’고 가정한 컨셉트라서 여느 낭독회와 달리 시인은 시를 낭독할 수는 있어도 발언은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기획했다. ‘죽은’ 시인을 사이에 두고 진행자끼리 시인은 이럴 것이라는 추측을 수다스럽게 주고받는 대화가 낭독회의 메인이었다. 장례식장 조문객처럼 진행자들은 모두 검은색 옷을 맞춰 입었다. 영정 사진 앞에서 조문객끼리 생전의 고인을 추억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인의 첫 낭독 시는 ‘무기록’으로 유서를 쓰는 내용이다.
‘너는 악필이다. 너는 유서를 쓰고 있다. 당장 매듭지어야 할 게 있다는 마음으로. 종종 네가 써놓고도 읽어내지 못하는 단어와 문맥이 있다. 교육은 너의 자세를 교정하려다 실패한 역사다. 제 손이 제 뜻대로 가지 않는 게 물의 성질을 닮았다고 너는 생각한다. 흐르는, 움직이는, 휘발하는, 차가운, 쥘 수 없는, 뜨거운, 무관심하지는 않은, 부드러운, 낙하하는, 너는 너를 두고 남겨지게 될 지인들을 떠올리며 쓴다. (하략)’
구현우 시인의 시는 표현이 어렵지 않아서 잘 읽혔다. 본인이 악필이라 했지만 정성스레 사인하는 모습에 악필마저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진행자들이 주고받는 내용은 시인에 관해서라기보다는 시의 내용에서 연상되는 소재에 관한 각자의 경험이나 생각으로 흘러가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담으로 흥겨웠다. 주인공은 시인이 아닌 느낌이랄까. 그게 나쁘지 않았다. 오늘 낭독회 기획에는 죽음이라는 게 어둡고 슬프지만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흥겹고 즐거울 수도 있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남의 얘기를 구경만 해서 그런지 작년 ‘감응의 글쓰기’ 수업에서 밤에 강좌 참가자(학인이라고 부름)들과 같이 시 읽고 소감 나누던 감흥과 몰입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특별한 시간이었구나. 최승자 <내 무덤 푸르고>로 시작해서 최재원, 귄누리, 이소호, 김현, 이제니, 에밀리 디킨슨까지 혼자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던 시들도 다양한 직업과 나이와 성향의 사람들이 함께 앉아 각자의 해석과 느낌을 내놓고 흥미롭게 집중해서 듣고 말하는 자리는 너무 매력적이다. ‘와, 저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구나, 시어를 다른 단어로 바꿔 넣은 채로 읽어보기도 하는구나, 저 시로부터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위로를 받는구나, 저분 목소리는 너무 좋아.’ 화요일 밤마다 열 번을 만나 서로의 이야기와 시에 감응하고 교감했던 시간은 시를 읽는 자리마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그때의 시간이 귀하게 다가왔다. 시만으로 만들어지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의 솔직한 진심이 담긴 글을 읽고 쓰는 과정이 숙성시킨 관계라서 가능했으리라. 친한 친구 사이라 가능했던 흥겨운 수다의 시낭독회처럼.
나는 구현우 시인에게서 친구에게 선물할 시집에도 하나 더 사인을 받아들고 비바람을 헤치며 혜화역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