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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Dec 26. 2023

지지않는 기싸움을 하려면

예측 가능한 변수를 늘려가면서 마음의 부담을 줄여라 

10여 년 전에 나왔던 '무릎팍도사'에 강호동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강호동 본인이 씨름 시합을 나갔을 때를 기억하며 했던 말이다.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피부를 맞대고 준비하면서 많은 '느낌'이 온다고 한다고 했다. 온몸으로 상대방의 기를 느낀다고 할까나. 상대방이 두려워하는지, 혹은 본인이 이길 수 있는지 상대방의 기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했다. 


기(氣)라. 어떻게 얼굴도 안 보고 그 기란 것을 느낄 수 있지? 당시에는 이해가 잘 안 됐다. 우리가 느끼는 기라는 것 자체도 어떻게 설명하기 힘든 '주관적인 것'에 가깝기도 했다.  


조금이나마 강호동의 말이 이해가 됐던 게 검도를 배울 때였다. 검도에서는 '기세'라는 단어를 쓴다. 어떤 아우라나 분위기라고 할까, 유단자 중에서도 고수 앞에 서면 느껴진다. 호면(투구처럼 생긴 것) 속에 얼굴 표정이 가려져 있지만 대련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느낌이 왔다. 생각보다 쉬운 상대를 만나 여유 있는 표정을 지을지, 혹은 의외의 일격에 당혹스러워하는지 등. 


당시 검도 사범은 '기세에서 눌리면 안 된다'라고 했다. 기세부터 이기고 들어가야 시합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격투기 선수가 시합 전 상대의 기를 꺾으려고 하는 것도 이런 기세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의도일 수 있다. 물론 심판의 휘슬이 불리고 두어 번 합을 맞춰보면 '진짜 기세'인지 허세인지 드러나긴 하지만. 


비단 검도나 씨름, 격투기뿐만 아니다. 상대방을 대할 때도 기란 것을 느낄 수 있다. 흔히 '그 친구는 기가 세'라고 하는 그 '기'라고 할까. 누군가를 처음 만나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탐색전을 벌인다던가,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한다던가. 이 때도 상대의 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원래부터 기가 센 사람이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타고난 연예인' 혹은 '관종'(관심종자)을 예로 들 수 있을까? 뭔가 상대방을 홀리듯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풍채가 좋은 사람도 들 수 있을 것 같다. 체구에서 내뿜는 아우라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몸집 크고 인상이 험악한 사람 앞에서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기는 하다. 


그렇지 않다면 '홈그라운드' 효과가 큰 것 같다.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반쯤 먹고 들어간다고 익숙한 환경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변인'이 많은 환경일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고 익숙한 환경일수록, 반대로 상대의 통제는 억제되고 어색할수록 내가 갖는 기세는 더 강해지는 것 같다.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특정 분야의 전문가와 토론을 한다면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내가 모르는 것을 상대방은 잘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 혹은 말 쓰는 언변이 '대외적으로 보이는 나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된통 망신당할 수 있다는 리스크를 안고 상대를 대하다 보니 수세적일 수밖에 없다. 입사나 입시 면접에서 면접관에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도 여기에 있을 것 같다. 


기자로서 인터뷰이를 만날 때도 이런 위험요소에 맞닥뜨리게 된다. 특히 지위가 높다거나, 무언가를 잘 안다거나 하는 등의 요소다. 애걸하는 쪽은 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연차가 낮고 덜 알려진 매체의 기자라면 더더욱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초식동물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처럼 이런 류의 저연차 기자들이 몰려다닌다. 군중 속에 있으면 안심이 되니까. 


이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매체의 힘이다. 이른바 많이 알려진 유명 매체의 아우라는 갑옷처럼 기자를 감싼다. 지식과 지위, 권력에서 열세에 있다고 해도 인터뷰이는 쉽사리 내 진영을 헤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갑옷이 튼튼하다 보니 기자의 기세도 자연히 살아난다. 소위 '꿀릴 게 없어지는 게임'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낯선 환경에 놓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인터뷰이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한다거나, 전혀 모르는 행사장에서 기자간담회 등을 진행할 때 등이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상당히 제한적이다.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인터뷰 때뿐이겠는가. 우리는 낯선 환경에 노출될 때가 종종 있다. 만만치 않은 상대와 기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고, 예측가능한 부분이 적다면 심적으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10여 년 낯선 이들을 인터뷰하고 만나면서 지식처럼 쌓은 게 있다면 바로 '익숙함'이다. 헐레벌떡 약속시간에 겨우 맞추거나 늦게 되면 그 '익숙함'을 느낄 시간이 협소할 수밖에 없다. '약속을 못 지켰다'라는 생각에 상대와의 기싸움에 눌릴 수도 있다. 


낯선 환경에서라도 익숙함을 찾으려면, 다른 게 없다. 정해진 시간, 약속한 시각보다 먼저 가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지라는 것. 예컨대 전등 스위치의 위치라도 알아 놓을 수 있다면(예측 가능한 경우의 수를 늘려 놓는다면), 그만큼 나 자신에게는 '여유'라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상대의 기세로부터 둘 수 있는 거리가 바로 '여유'다. 여유는 표정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내가 얼마나 익숙할 수 있는가에도 달린 것 같다. 


비로소 나도 내 기세를 펼치고 상대방과의 기세 대결에 들어갈 수 있다. 그 기세는 내 표정이나 눈빛뿐만 아니라 공기와 숨소리로도 전달된다. 최소한 지지 않는 싸움을 벌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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