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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Sep 02. 2024

나 혼자 잘나서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국회의원 공천으로 본 운칠기삼의 사례 

늦었지만 지난 22대 총선 얘기를 해보련다. 그때 낙선의 상처를 받았던 분들도 지금은 회복된 듯하고. 22대 국회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일단 공천이라는 것. 공천은 국회의원들 또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후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목숨과도 비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내 '공천이 곧 당선의 지름길'인 경우에 그렇다. 민주당의 호남, 국민의힘의 영남은 말할 것도 없다. 그쪽은 자기 내부 후보자들끼리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요새 들어서 드는 생각은 그렇게 치열한 다툼을 벌여 국회의원이 된다고 한들,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다. 예전 국회 때처럼 연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권과 금전을 거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0명 모자람 직한 스텝(보좌진)들을 데리고 제왕적 권력을 누리고, TV나 신문 등 매체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때로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는다. 


다만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는 의원은 300명 중 소수에 해당한다. 누구나 전교 1등이 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이 주목받고 스타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지역에서는 후한 대접을 받긴 한다. 그러면서 민원의 대상이 된다. 일벌들이 여왕을 만들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벌들이 여왕을 내치기도 한다. 효용가치가 없으면...) 


여의도에서는 의원을 은어로 '뱃지'라고 하는데, '뱃지를 단다'라고 하는 것은 '당선됐다'를 의미한다. 금으로 도금된 뱃지 가격은 비싸야 5만원 정도. 그 뱃지를 달기 위해 수많은 인간군상이 자신들의 권력 욕망을 드러내며 경쟁한다. 


물론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법안을 만들고 우리 사회 내 이해 관계자들을 조율한다. 일반 기업인보다는 '법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게 많다. 그러나 반대로 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아니 무력하게 주저 앉는 경우라고 할까. 


한 예로 전남 지역에 의대가 없는데, 그곳 의원들은 1990년대부터 '의대 신설'을 요구했다. 목포나 순천, 여수에 의대를 지어 젊은 인재 유출을 조금이나마 막자는 취지다. 그런데 지금까지 쉬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다른 지역 의원들의 지지를 못받고 있기 때문인데, '내 지역 아니면 관심없다'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뱃지를 달기 위해 어떤 이는 십수년간 지역구를 갈고 닦는다. '갈고 닦는다'라는 의미는 지역민과 유지들을 만나며 그들의 얘기를 듣고 때로는 민원을 듣고 '해결해주겠노라' 약속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와중에 이권 교환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욕망의 대잔치에 누군가는 뱃지를 달고 누군가는 실패한다. 누구는 십 몇년을 부던히 노력해도 안 된다. 또다른 누군가는 '운좋게' 뱃지를 달게 된다. 노력이라는 변수와 상관없이 뱃지를 다는 모습을 보면 '운7기3'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란 것을 느낀다. 


(물론 각 당의 영입인재들을 보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이긴 하다. 특히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성공했다'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 이들 뿐인가. 따지고 보면 이들이 정당 인재위원회에 눈에 띄어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운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물론 자기 스스로 개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중 하나가 '나에게는 공천의 기회가 없겠군'이라고 느끼는 현역 의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당 지도부와 친하지 않은 '비주류'이거나, 당 입장에서 효용성이 떨어지는 이들이다. '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를 만들어줘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 중 몇몇은 반(反)주류가 된다. 새정치를 얘기한다거나 '다양성 부족' 등을 얘기하면서 주류에 반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개척해서 당을 나가기도 한다.  공천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서다. 선거를 앞두고 흔하게 보이는 정치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새 당의 성공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도 그랬다.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非 이재명), 혹은 반명(反 이재명)으로 나뉜 상태에서 공천권을 두고 내홍을 겪었다. 이중 일부는 민주당 지도부의 원대로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도 있다. 


또다른 일부는 자기들끼리 세력 규합을 한다. 주류가 갖고 있는 한계와 불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형적인 '정-반-합'의 과정이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원칙과상식'이라는 비주류 모임이 나왔다. 비명을 자처했던 의원 4명이 모였다. 이들 모두 이재명 대표의 일극체제를 비판해다. 그들의 주장은 비주류로서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들을 보고 누군가는 이들이 공천을 받지 못할 것으로 여겨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뱃지를 더 달고 싶은데, 달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들의 향후 행로를 보면 또다른 '인간사'가 읽힌다. '운'이 작용하고 안 하고에 따라 그 결과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일단 이들 의원 4명을 이해하기 쉽게 A, B, C, D로 지칭해서 보겠다. 


이들 공통점은 민주당 지도부의 공천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대권주자인 이재명 대표에 대해 공식 반기를 들었으니, 민주당내 공천은 커녕 그 전(前) 과정인 경선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당시 지도체제의 전면 개편을 요구했다. 

 

그러나 인생사 쉬울리 없다.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탈당을 결행한다. 반 이재명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분모가 있었지만, 막상 탈당을 하려고 보니 각자의 생각이 달랐다. 그 즈음 사건 하나가 터진다.  


정치가 생물이란 것을 느낄 수 있는 게 이 사건이었다. 원칙과상식에서 목소리를 가장 크게 냈던 D의 지역구에서 유력 친명 인사가 낙마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친명인사는 개딸이라고 불리는 당원들의 절대지지를 받고 있었다. 방송 등을 통해 인지도도 높았다. 나오면 '당연히 될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다. 농담삼아 했던 발언이 성적 희롱으로 해석돼 회자가 됐다. 제로섬 경쟁이나 다름없는 공천 경쟁에서 이런 악재는 경쟁자에게 호재가 된다. 일은 커졌고 이 친명 인사는 경선 출마조차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자신의 지역구가 무주공산이 되자 D의 속내는 복잡해졌다. 하위 순위에 들어가 점수는 깎였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D는 민주당에 남았다. 경선까지 치러보기로 했다. 혹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만류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어느 게 먼저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D는 남았고, A,B,C는 탈당했다. A와 B는 각각 보수성향 소수 정당에, C는 민주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에 입당했다. 현역의원이라는 메리트 덕분에 각각 그 안에서 그 조직을 주도하게 됐다. 


민주당에 남은 D는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까이는' 존재가 됐다. 이 와중에 불문율 하나가 깨졌다. '비례대표는 현역 의원이 출마한 지역구에 나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같은 당 후보끼리 '카니발'을 벌이면 안된다는 것인데, D의 지역구는 지역구를 찾던 비례대표 의원들의 타깃이 됐다. 명분도 좋았다. 당을 배신하려던 '배신자' 명분이다. 


이렇게 되니 남보다도 더 못한 싸움이 됐다. 같은 당 후보이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결국 D는 경선에서 떨어졌다. A, B, C가 있는 각 당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이미 늦었다. 민주당에 남아 있기도, 그렇다고 타당에 가기도 모호한 처지가 됐다. 


A와 B는 각각의 자기 지역구에 출마했다. 각자 재선 이상 했던 곳이기에 유권자들이 자신을 찍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운명은 야속했다. 지역구민들은 A와 B가 아닌 민주당 다른 후보를 찍었다. 과거 그들이 뱃지를 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역량이 빼어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소속된 정당에 대한 지역민의 지지도였다는 게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C는 자신의 지역구를 떠나 새로운 지역구로 갔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민주당을 나와 나랑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없었던 듯 하다. 그래서 그가 간 지역은 민주당 현역 의원이 불출마를 했던 지역이었다. 사실상 민주당의 정치신인과 대결하는 지역이었다. 


허나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그 신인한테도 굉장히 큰 격차로 뒤처졌다. 이 지역 역시 인물보다는 정당이 우선 선택 기준이었다. 그대로 간다면 A와 B와 같은 '낙선'의 운명에 처해질 게 뻔했다. 


사람 일은 모른다고나 할까. C가 출마한 지역의 정치신인의 공천 취소가 됐다. 공천 서류를 민주당에 넘기는 과정에서 일부 누락된 게 있었고, 그게 문제가 됐다. 이 정치신인은 뭐라 변명도 못한 채 정치 무대에서 내려오게 됐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시간이 촉박해 새로운 인물을 공천할 수도 없었다. C 입장에서는 민주당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없이 선거에 임하게 됐다. 어쩌다보니 민주당 지지를 받게 됐고 당선됐다. A~D를 비롯해 민주당을 탈당했던 여러 사람 중 거의 유일한 당선인이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C는 22대 총선에서 '인생은 운이다'라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됐다. 


인생은 운이라고 하는데, 이런 선거 과정을 보면 진짜 그런 것 같다. 정해진 운의 틀이 있고, 그 안에서 자기의 운명도 갈리는 것 같다. 그래서 불확실성이 컸던 시기일 수록 점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커지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다. '내가 잘나서' 뱃지를 단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변 사람들이 도와서 혹은 다른 절대적 조건(정당) 덕분에 공천도 받고 당선도 되고 하는 것 같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운과 때가 더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좀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사람을 대하는 품격이라고 할까. 경험적으로 봤을 때, 좀더 겸손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사람들이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주변 사람에게 인심을 잃은 의원은 어떻게 노력을 한다고 해도 공천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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