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흔히 남한, 즉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남북관계와 북러, 북미, 북중 관계를 봅니다. 언론들도 우리 측 정부기관이 얘기하는대로 받아 쓰기 급급합니다. 그러면서 잊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김정은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것이죠. 미국의 공격을 받을 염려가 현실적으로 없는 우리는 마냥 우리 입장에서 김정은의 군 파병을 단지 '도발', '한반도 안정을 깨는 불온한 행동'으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져봅시다. 북한 김정은 입장에서 말이죠.
먼저 북한은 언제든 세계최강 미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항상 안고 있습니다. 미국 동맹국인 우리 입장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지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나라들은 결코 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죠. 70여년전 미군의 공습을 경험해봤던 북한 사람들은 그 공포감이 더 클 수 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주변 군 원로들의 경험담을 직간접적으로 들었던 김정은에게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또 북한의 경제 체제가 근근이 연명하고 있을 정도로 취약하다는 점, 이에 따라 그 체제가 언제든 붕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 김정은이 매우 두려워하는 것이죠. 그래서 김정은이 한때 우리 문재인 전 대통령을 통해 경제 활로를 뚫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려고 했던 것도 이 맥락에 있습니다.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사회주의 국가 체제에 자본주의 경제를 이식하려고 했던 것이죠.
북한의 돌출 행동도 이 같은 맥락(체제 수호)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제1 원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듯 '계약의 이행'이 아니라 '체제 수호' 입니다. 이 체제 수호에 반하는 어떤 것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죠. 또 체제 수호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이든 할 것입니다. 북한 전 인민을 굶겨가면서 핵개발을 하는 것도, 핵보유국이 되어야 주변 강대국, 특히 미국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정은이 그의 어린 딸 김주애를 북한 인민 앞에 공개한 것도 살펴봐야 합니다. 단순히 독재자의 자기과시를 넘어 그 속에 암시된 메시지를 봐야하고 김정은 입장에서 풀이해야한다는 얘기입니다.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김주애를 자신의 후계자라고 칭한 적은 없으나, 상징적으로 봤을 때 '나 다음은 이 아이다'라는 메시지는 분명히 주는 것 같습니다. 일찌기 후계자 수업만 20년 가까이 받았던 김정일, 김정일 살아 생전 대중 노출이 거의 없었던 김정은의 사례와는 사뭇 다릅니다.
게다가 딸입니다. 북한 같은 왕조 국가에 아들도 아닌 어린 딸을 자신의 후계자처럼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일 수 있습니다. 남존여비가 강한 북한 같은 국가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는데 유학중이거나 아직 어린 상태라서 공개를 못할 수도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김정은은 '다 크지 못한 딸'을 서둘러 공개해야 했을까요. 어쩌면 어린 아들이 있을텐데도 말이죠.
그건 이런 이유가 아닐까요. 본인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건강이상설은 수년전부터 꾸준히 나왔습니다. 170cm 정도 키에 몸무게가 140kg을 넘는다는 것은 건강에 치명적입니다. 얼마 안 가 걷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좋아질 수 있습니다. 30대까지야 젊은 기운으로 그 무거운 체중과 대사증후군, 고지혈증을 버텨낼 수 있겠지만 노화의 나이에 접어드는 마흔 이후부터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후속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죠.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왕조를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후 대책을 잘 세워놓아야 김주애든 혹은 공개되지 않은 어린 아들이든 그 체제를 이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부적으로는 김주애의 후견인을 만들어 놓고 그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 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주요 다이묘들에게 충성 서약을 받았던 것처럼요. (충성 서약 그깟것은 언제든 파기되기 마련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히데요시 앞에서 충성 서약을 했드랬죠.)
그것 뿐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북한이 진짜 두려워할 게 있습니다. 바로 중국과 미국입니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 잘 알려진대로 만주 북한군 접경 지역에는 중국의 기계화 부대가 다수 배치되어 있습니다. 북한 유사 시 언제든 평안도를 통해 평양까지 밀고 내려갈 부대입니다.
갑작스럽게 북한 내 권력의 공백이 생긴다면, 중국은 미국에 개입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서둘러 북한을 장악하려고 할 것입니다. 북한의 체제 붕괴에 따라 남한에 흡수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북한이 현 상태로 남아있거나 자신들의 괴뢰정부로 남아 '중간지역'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죠. 왜냐, 중국도 미국 세력과 직접 국경을 맞닿아 있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죠.
이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중간지역' 확보 욕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거대국가들은 또다른 제국 세력과 '중간지역'을 둬 완충을 하려고 했습니다. 고대 로마가 내내 전쟁을 벌였던 것도 완충지역 확보를 통해 영토 내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던 데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나토(NATO)와의 완충지역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김정은 사후 북한이 미국의 영향권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 전에 친중 괴뢰정부라도 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중국은 김정은 체제 붕괴 후를 대비해 잠재 지도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비근한 예가 김정남이겠죠. 김정은이 김정남을 제거한 것도 '미래 있을 변수' 하나를 제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은 중국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후 김씨 왕조의 붕괴를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자신의 씨족 중 한명이 지도자 자리를 물려 받는다고 해도 중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죠. 체제 수호가 국시나 다름없는 김정은이 결코 원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이런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김정은은 러시아를 끌어들이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문화와 인종이 다른 러시아가 북한을 점령할 가능성은 중국보다 낮겠죠. 중국이 북한을 접수하고자 할 때 러시아가 나서 견제버튼을 눌러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19세기말 구한말 때 자신의 왕조가 붕괴 위기에 빠지고 일본의 노골적인 침탈 야욕에 러시아와 미국 등 강대국을 끌어들여 세력 균형을 맞추고자 하려고 했던 그들처럼요.
때마침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장기화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할 정도'로 궁핍합니다. 평소라면 결코 받지 않았을 최빈국 북한의 호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북한에게는 러시아에 생색을 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여기에 북한 자신들의 군대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계산한 것 같습니다.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을 통해 실전경험을 쌓고 무기 현대화까지 한 게 예죠. 몇 만의 파병 북한군이 전체 북한군의 역량을 높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투 역량 면에서 한 결 나아질 수 있습니다. 현대 중국군이 갖지 못한 실전경험까지 갖추게 되는 것은 덤이죠. 우리에게 위협이지만 중국군에게도 위협입니다.
미국과는 어떻게 될까요? 김정은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입니다. 자기 사후 미국으로부터 침공받을 염려를 덜려고 하겠죠.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김정은은 직접 평화협정에 나설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핵보유국 인정을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미국내 보수 세력의 반발이 있겠지만, 트럼프 입장에서도 손해보지 않는 거래가 됩니다.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동북아시아 평화를 가져왔다라는 생색을 낼 수 있으니까요. 그 업적을 트럼프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과거에도 이를 시도하려고 했고.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는다? 이러면 우리 정부의 입장이 모호해집니다. 북한과의 대화채널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까지 인정해야하는 상황을 우리 정부는 인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특히 현 윤석열 정부에서는 말이죠.
문재인 정부 때는 그나마 북한과 미국 사이 중재자를 자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러시아와의 관계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중국과는 소원해졌습니다. 북한과는 아예 단절됐고요.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나선다면 한국은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전쟁 휴전협상 당시 우리 정부가 배제됐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