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美 물가 상승을 예상케 하는 '강력한 징후'

브레이크이븐

by 팟캐김

금리는 경기를 보는 창이라고들 한다. 사후적으로 확인되는 지표이긴 하지만, 여러 모습을 살펴보면 경기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여기서 말하는 ‘금리’란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수익률’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금리는 자연발생적인 시장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장의 심리를 가장 잘 담아내는 숫자라는 점에서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뉴스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지만, 미국에는 브레이크이븐 인플레이션(Breakeven Infl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채권시장이 생각하는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오를까”라는 기대를 보여주는 지표다. 물론 물가 상승을 호경기, 물가 하락을 불경기라는 가정 아래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지만, 방향성을 읽는 데는 유용하다.


브레이크이븐은 동일 만기의 명목국채 금리에서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를 뺀 값으로 계산된다. ‘명목 금리에서 물가를 빼 실질 금리를 구한다’는 경제학 이론을 실제 시장 지표로 옮겨놓은 셈이다.


여기서 TIPS(Treasury Inflation-Protected Securities, 물가연동국채)는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특별한 국채다. 일반 국채는 발행 시점에 정해진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지만, TIPS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맞춰 원금이 조정된다. 이자율(쿠폰)은 고정되어 있지만, 원금이 CPI에 연동되므로 결과적으로 이자액이 물가에 따라 달라진다. 덕분에 인플레이션이 거세질 때 투자자는 실질가치가 보존된다. 한국도 유사한 구조의 물가연동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fredgraph (1).png 10년물 브레이크이븐과 5년물 브레이크이븐의 움직임


◇금융위기와 겸친 디플레이션 공포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가 본격화됐을 때, 5년물 브레이크이븐은 -2%까지 떨어졌다. 이는 시장이 “앞으로 5년간 물가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음을 의미한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침체로 빠지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채권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반면 10년물은 낙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장기적으로는 물가가 다시 정상화될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전 세계 봉쇄와 소비 위축이 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되면서 브레이크이븐은 급락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고 연준이 초완화 정책을 시행하자, 지표는 빠르게 반등했다.


반대로 2021~2022년에는 인플레이션 급등을 선제적으로 예고했다. 실제 CPI가 치솟기 전 시장은 이미 그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었다.


5년물과 10년물의 차이도 흥미롭다. 5년물은 단기 충격에 민감해 급락하거나 급등하는 반면, 10년물은 대체로 2% 근처에서 움직였다. 이는 연준의 장기 물가 안정 목표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단기물은 경기의 긴박한 상황을, 장기물은 정책 신뢰와 장기적 안정을 반영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2024~2025년 현재 5년물과 10년물 모두 2%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시장은 단기와 장기 모두에서 “물가가 연준 목표 수준에서 관리될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브레이크이븐은 완벽한 예측 도구가 아니다. 투자 심리, 위험 프리미엄, 유동성 요인 등이 섞여 실제 물가와 괴리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예측과 경기 전망을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로 기능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최근의 브레이크이븐은?...트럼프 관세 효과


2024년 들어 미국 물가는 뚜렷하게 안정세를 보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추진한 고금리 정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2022년이 인플레이션의 정점이었다면, 2024년에는 점진적인 물가 안정과 함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형성되었다. 공급망 충격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진정된 덕분에, 채권시장이 바라보는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fredgraph (2).png 2024년 하반기 안정국면을 보였던 물가가 2024년말 다시 올랐다. 관세 부과에 따른 인플레이션 예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5년물과 10년물 브레이크이븐은 2.2% 전후에서 움직이며 물가가 연준 목표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했다. 그러나 2024년 하반기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두 지표가 동시에 상승하기 시작했고, 2025년 초에는 5년물이 10년물을 위로 추월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이는 단기 인플레이션 압력이 장기보다 커졌다는 신호다. 시장은 “앞으로 몇 년간 물가 상승이 더 거세질 수 있다”고 보면서도 “10년이라는 긴 흐름 속에서는 다시 안정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맞물린 관세 정책이 자리한다. 그는 1기 집권 당시에도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고, 이번에도 비슷한 정책을 예고했다. 관세는 수입 원가를 높이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단기적으로는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지만, 장기적으로는 교역 둔화와 경기 위축을 불러오므로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덜 움직인다.


결국 물가 자체는 안정된 듯 보였지만, 관세와 무역 긴장이라는 리스크가 깊이 반영되면서 시장은 단기 인플레 우려를 강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년만기 채권은 정말 10년 남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