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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신 Jun 07. 2023

여배우와 소하공주

[감성 에세이]

    

한 여배우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녀는 ‘개화 시기가 3월 말인 개나리가 1월 초에 예쁘게도 피었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가 어떤 자연재해를 겪어야 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 적었다. 2주일 전 기록적인 한파가 북반구를 강타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무색하게 알프스산맥의 눈이 녹아 흙바닥이 드러났다고 한다. 

지난여름 유럽은 500년 만의 가뭄을 만나 강과 호수가 바닥을 드러냈다. 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한다고 해도 이런 가뭄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막으로 변하고 말 테니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막이 보고 싶었다. 봄이면 세상이 부예지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서쪽에서 날아오는 모래 먼지 때문이라고 했다. 모래가 얼마나 많으면 우리나라까지 올까? 이 궁금증이 사막을 내 눈으로 보고야 말겠다는 염원을 품게 했다. 사하라 사막, 나미브 사막, 아타카마 사막, 고비 사막. 온 세상의 사막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소망을 키웠다. 

마침내 황사의 원흉 중 하나인 고비사막에 갔다. 화면으로 보았던 높은 사구에 올랐다. 사막의 끝이 아득했다. 길이가 1,600km나 된다니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실감 났다. 바람이 불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래가 날아올랐다. 다음날 이른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들판을 지나 모래 산으로 갔다. 박명이 비칠 즈음 사구에 도착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계속 걸었다.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모래 위에 누웠다. 사르락 사르락 사사사사. 사막의 숨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날아오른 모래 알갱이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사막의 속삭임을 듣고 있자니 그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미이라 발굴 장면이 떠올랐다. 하얀 얼굴에 갈색 긴 속눈썹을 가진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다. 누란 서쪽에 있는 공동묘지에 있는 1,000여 개의 관 중 하나의 주인이었다. 그녀는 펠트 모자를 쓰고, 모직 망토를 두르고, 금 귀걸이, 모직 로프 목걸이, 레이스 업 스커트에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소하공주라는 이름을 붙였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옛 왕국인 누란은 면적이 약 37만km2나 되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었던 번영한 도시국가였다.

소하공주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살았지만, 이곳 고비사막에는 공룡들이 살았다. 곳곳에서 공룡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고비는 몽골어로 물이 없는 곳이라는 뜻인데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이곳에는 공룡이 번성할 만큼 많은 물이 있었다는 의미다. 언제부터 이 지역이 급속히 건조화되었는지 모르나 지금의 사막이 기후변화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기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생태계의 변화를 동반한다. 온난화 덕분에 우리나라도 아열대 기후가 되었다. 패션후루츠, 구아바, 망고, 용과, 파인애플, 파파야, 아보카도 등 종류도 다양하다. 바나나는 중부지방인 청주에서도 자란다. 열대 과일을 먹는 대신 사과는 못 먹게 될지도 모른다. 1월 초에 개나리가 피고 뱀이 겨울잠에서 깨게 만든 온난화의 원인은 온실가스다. 온실가스의 77%를 차지하는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는 수천 년 동안 일정 수준을 유지하다가 20세기 들어서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0년 배출량은 510억 톤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멈춰도 겨우 6% 줄었을 뿐이라고 한다. 

극한의 추위나 더위가 올 때면 으레 온난화가 화두가 된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해마다 덩치가 작아지는 양羊과 새(온난한 지역일수록 방열을 위해 몸집이 작아진다),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 사라지는 빙붕. 기후의 변화는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영향을 준다. 여배우가 피켓을 든 날은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이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는데 영상 6~10도였다. 

몇천 년 전 소하공주가 살았던 곳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여배우가 사는 서울의 한강도 아름답다. 지금 당장 기후 위기에 대처하지 않으면 여배우와 우리의 후손은 모래 속에 파묻힌 소하공주처럼 될지도 모른다.

(지구의 눈물, 자연을 사랑하는문학의집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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