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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와우 Jul 07. 2023

고양이의 정복 욕구

나는 겁이 많지만, 끝까지 올라갈 거예요

고양이는 어디든 정복한다

고양이와 함께 산 지 몇 개월이 지나 느낀 점 중 하나는 고양이의 정복욕구는 끝이 없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 오르고 싶은지 자그마한 네 발이 올라갈 수 있을 거란 판단만 들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올라가려고 각을 잰다. 가족들이 "어? 저길 올라가려고?" 하는 순간 훌쩍! 아주 가볍게 올라간다.


우리 집 럭키도 고양이답게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높은 책장, 옷장, 문 위까지 오를 수 있는 곳은 모두 다 올라갔다. 처음 보는 고양이의 문 위를 걷는 모습은 마치 외줄 타기 무형문화재를 보는 듯했다.

와! 이게 가능하다고?

공간에 천장이 없다면, 튼튼한 상자가 무한으로 쌓아져 있다면 아마 고양이들은 달까지도 갈 것만 같다. 올라가서 뭘 하는지 보아하니, 뭐 별 거 없다. 올라가서 '인간들을 내려다보기'를 한다. CCTV마냥 내가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구경한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럭키가 어디 숨으면 아주 막막했다. 금동이(말티푸 추정, 현재 10살 아저씨)는 주로 지면에서 움직이고 집에 가자마자 딱 보이는 곳에 있어왔기에 내가 동물을 집 안에서 '찾아야'할 일은 그동안 없었다. 근데 럭키는 자꾸만... 숨었다! 그것도 아주 잘. 자꾸 여기저기 숨어있고 올라가 있다는 것이 잘 드러눕는 반려견과 지내오던 나에겐 낯설기만 했다. 1년이 지나고 나서야 고양이가 주로 있는 곳들에 대한 정보 데이터가 쌓였다.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주 들어가는 침대 밑 아니면 옷장 위 짐들 사이, 벽과 액자 사이, 열린 옷장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옷가지들 사이에 누워있을 수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내가 아주 열심히 애착 장난감을 딸랑딸랑 들며 “러어키~ 러어키~!” 자신을 찾고 있을 때 종종 책장 위에서 자신을 열심히 찾고 있는 날 가만히 구경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 여기있다냥

고양이는 참 묘(猫)하다. 아주 잘 숨고, 동시에 아주 호기심이 많다. 공간의 가장 밑에도 잘 들어가고, 공간의 가장 위에도 잘 올라간다. 묘하다(妙하다)는 말은 상극을 동시에 가능하다는 의미처럼도 들린다. 럭키가 집안 여기저기에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터를 하나하나 정복 중이구나 생각했었다.


꼬리를 살랑 흔들고 사뿐 내려앉으며 책장 위에서 거실 정복 완료! 냉장고에서 부엌 정복 완료! 안방 옷장 위에서 정복 완료! 그리고 또 어디 올라가지?


오늘은 여기다!

가장 위에서 도도한 얼굴로 아래를 여유롭게 내려다보는 럭키를 보며 내가 내려다본 것도 아닌데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기서는 내 정수리가 이렇게 보이겠지?’ 상상하며 풉 웃게 되기도 하고, 왜 나는 위에서 볼 생각은 못했지 사뭇 진지해지기도 했다. 하여간 나의 고양이 럭키는 겁이 참으로 많은데 그 겁을 갖고서는 아주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는 걸 좋아한다. 하긴, 겁이 많다고 해서 끝까지 올라가고 싶지 않으리란 법은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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