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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b 심지아 Jul 22. 2020

나를 기억하는 방법

25년만에 마주앉은 민정이

“민정이 좀 봐.”

지연이가 톡으로 보내준 캡쳐 사진 속에는

정말로 민정이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동창이면서 여지껏 거의 매일  

연락하는 사이인 친구 지연이는

같은 미술학원에 다니며

입시준비도 함께한 사이다.

우리는 서로의 결혼식 들러리도 서고

(한국에서 결혼한 지연이에게 난 가방모찌)

남에게는 차마 못할 이야기도

서로에겐 다 털어놓기도 하고

좋은 일이나 나쁜 소식이 있으면

가족 다음으로 꼭 알리는 자매같은 친구다.


우리가 특별히 친해진 계기는 같은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는데

집 근처에 있던

“예술의 거리” 라는 미술학원을 다녔었다.

삼층짜리 빨간 지붕이 있는 단독 건물로 앞에 넓은

주차장도 있고 지붕에도 올라갈 (몰래) 수 있는

낭만이 있는 학원이었다.

예술의 거리는 특이한 연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한참전에 지나가며 보니 웨딩홀로 변해있었다.

갈비집같은걸 해도 좋을텐데.


아무튼 그 학원에 민정이도 있었다.

민정이는 나랑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워낙 얼굴이 작고 두상이 이쁜데다

핏줄이 비칠정도로 흰 피부에 가는 머리결,

십대 주제에 뭔가 초월한 (?) 태도로

어딜가나 눈에 띄는 아이였다.


민정이 나 지연이 우리 셋은

학교가 끝나면 교복차림으로 학원에 갔다.

버스로 서너정거장 되는 거리였지만

민정이는 걸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종종 민정이와 함께 걸어가기도 했는데

예술의 전당 앞 긴 가로수길을 지나며

한시도 쉬지 않고 깔깔대고

나뭇잎을 일부러 밟고

그렇게 걸어서 학원에 가곤 했다.


근처 분식집에서 매일 셋이 밥을 먹고

네다섯시간 함께 그림을 그렸다.


민정이는 아주 어릴때부터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괴짜였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않는 편이었던

나나 지연이가 보기에 무지 “신기”했다.


민정이네 집에 놀러갔더니

너무 생각보다 평범하고 넓고 좋은

아파트여서 놀랐고 - 민정이는 늘 용돈이 부족한 듯 보여서 집안 사정이 어려운 줄 알았기 때문에. 이노무기지배가 용돈을 전부 씨디라든지 갖고 싶은것들에 다 써버려서 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방 안에 온통 민정이가 벽지위에 페인트로 마구 그려놓은 그림들이나 쌓여있는 오브제등을 보고 두번 놀랐다. 천장 문짝 할거 없이 마구잡이로 그냥 그려놓은 그림들과 대형 쓰레기 (라고 쓰고 민정이 작품들 이라고 읽음) 가 쌓여있는 방을 우리엄마한테 들키면 방을 통채로 버려버릴게 분명했으니까.

 

어찌보면 상업학원이랑 학생의관계일뿐인데

독특하게 강력한 연대를 가지고 있던

예술의 거리를 나랑 지연이는 떠났다.

고2 두번째 학기에.

유명한 선화예고 선생님 출신 선생님들이

모여서 운영하는 화실을 엄마가 알아왔고

당시 동양화에 빠져있던 나는

동양화로 유명했던 그 화실에 한번 가보고

바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지연이도 같이 옮기기로 했는데

민정이는 그런 우리한테 서운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예술의 거리를 떠나는 것에 묘한

죄책감을 가졌던 나는

민정이하고 이후 서먹해졌다.

학교에서 마주쳐도 뭔가 이전같지 않았다.


나는 미국을 가게 되었고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민정이는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왔고

그러면서 우리는

그 흔한 아이러브스쿨이나

동창모임으로 만날 일도 없이

단 한번도 연락이 없었다.


그런 민정이를 지연이가

최근 연결된 동창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처를 물어보고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몇년전에 결혼한다는 소식에

카톡을 주고 받기도 했고

그 전에 연락이 닿은적도 있는데

만나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을때

민정이와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민정이는 내가 그림 그리지 않고 있다는게

너무 의외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당연히

회화를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 라고.


미술학원에서 배우는 입시 실기 -

정물화나 소묘같은것을 점수로 메기는

획일화된 그런 그림을 나는 꽤 잘 그렸다.

늘 모의고사에서 최고점수도 받고

손이 빠른 편이었으니까.

민정이는 그런 나에게 늘 너는

정말 잘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렇게 민정에게 기억된다는 것이

나한테는 인상이 깊었다.

석고상 뎃셍하는 손은 내가 빠를지 몰라도

나는 민정이처럼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늘 부러워했더랬다.

어린 마음에도 민정이야 말로 진정한 아티스트의

면모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 민정이의 남다른 스타일이나

행동을 고대로 따라하는

그루피같은 애들도 종종 있었으니까.


그런 민정이와 거의 25년만에

한 백화점의 식당코너에 앉아

동창들 이야기와 각자의 딸, 남편,

지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사라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듯 여겨졌다.


민정이는 회화작가를 하고 있었고

내 아이보다 한살 어린 딸이 있고

예술의 거리를 다닐적에

민정이를 짝사랑했던 동갑친구와 결혼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말했다.


“내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좀 모랄까, 어두웠던 거 같애.

늘 뭔가 불만이고 어둡고 그랬던걸로 기억이 나”


민정이는


내가 기억하는 너는

굉장히 발랄하고 웃기고

항상 장난치고..

늘 허공에 떠있는거 같았던 내 학창시절에

너랑 있을땐 유쾌하고 장난도 많이 치는

밝은 순간들로 기억하는데.

너는 나한테 그런 친구였어.


라고 말했다.


내가 그랬나??

나는 늘 뭔가 어둠속을

헤매고 다니고

늘 졸렸고 주변을 싫어하고

그런 기억이었는데.


민정이와 나는 우리 곧 또 보자.

다음번에는 애들을 데리고

어디 분수대라든지

키즈카페에라도 가보자 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민정이와 연락이 닿아서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니까.


누가 그러던데,

사람은 혼자서 행복해질 수가 없다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민정이가 기억해주고

또 나는 민정이를 기억하고

그렇게 해서

나는 또 나를 기억할 수가 있고.


장마가 끝나면

꼭 애들을 데리고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또 만나지 못한다 해도

오늘을 기억할 수 있어 좋았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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