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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ul 02. 2018

홍대 불법촬영

 지난 5월 1일, 홍익대 누드크로키 수업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이 여초 커뮤니티 워마드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 사건은 여성이 피해자인 여느 몰카와 달리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우리의 사법체계는 재빨리 이 가해자를 검거해 들어갔다. 갖은 변명으로 여성이 피해자인 몰카에 대해서는 태만한 경찰이 남성이 피해자가 되니 기민하게 움직였고 이는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촉발시켰다. 이 사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몰카는 그 피해자의 성별에 관계없이 명백한 불법이며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는 사법체계와 언론을 포함한 우리 사회는 비판받아 마땅하다.”이다.


홍대 모델 몰카 가해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히고(좌) 이에 여성들은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했다(우).        출처 :  경인일보(좌), 여성신문(우)


 이 사건에 대한 나의 판단도 동일했기에 굳이 글을 쓰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8 한국문화사회학회 봄 학술대회에서 윤김지영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몇 가지 생각할 점이 보였다. 그의 주장은 이 사건이 미러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미러링(mirroring)이란 혐오적인 말이나 글, 사상·행태·행동의 주체와 객체를 뒤집어 사회에 통용되던 것들이 얼마나 차별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행위다. 주로 여성 혐오적인 말, 글, 사상, 행동의 성별을 뒤집어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성차별을 드러내는 용도로 쓰였다.


남성이 여성을 찍는 몰카에 여성은 계속해서 “찍지 마세요.”라고 대응했다. 이 반응은 찍고 말고의 권력은 남성들에게 있음을 확인시키며 오히려 남성들의 몰카를 장려한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면 여성이 가해자가, 남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기존의 가해 남성 - 피해 여성의 구조를 흔든다는 점에서 운동의 효과적 전략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나는 성범죄의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그는 남성들의 몰카와 이 사건은 다르다고 구분 지었다. 남성들은 몰카를 성적으로 소비했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기억나는 점은 그가 앞서 발제에서 한 말 중에 페미니즘 운동의 전략을 좀 더 급진적으로 세울 필요에 대해 말했다. 현재의 도덕 체계는 남성 중심의 도덕 체계이며 페미니즘 운동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코르셋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창을 깨고 마차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도덕 바깥에서 좀 더 효과적인 운동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913년, 더비 경마대회 도중 서프라제트 중 한 명이었던 에밀리 데이비슨이 왕의 말에 치여 사망함. /출처 : enesto


 확실히 폭력적인 수단을 포함해서 현재의 도덕 체계에서 자유로운 운동의 전략은 필요하다. 동시에 그 폭력의 대상이 누구이며, 어느 정도 수준에서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나의 의문은 이 사건처럼 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된다고 해서 한 개인에게 향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냐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이 성폭력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성폭력의 고리를 끊기보다는 더욱 강화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더불어 이 사건이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여 본다. 이 사건은 사법체계와 언론, 사회의 기민한 반응을 이끌어 내며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였고, 이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와 행동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남성들에게 똑같은 두려움을 심어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 사건 이후 남성들은 여성들처럼 화장실 등에서 몰카에 찍힐까 두려워하는가? 나부터 대답하자면 아니다.


 이 사건을 통해 남성도 몰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남성들은 여성들이 남성을 성적 대상화 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즉, 여성들이 몰카 범죄를 통해 느끼는 두려움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남성들의 성적 대상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들을 성적 대상화 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고착화된 구조에서 단지 성별을 뒤집은 몰카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을 직접 성적 대상화 삼아 소비하는 등의 행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성적인 행위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을 운동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좋으나 나는 그것이 개인을 향해도 되는 가에 대한 물음을 하는 것이다. 분노와 폭력은 보다 거대한 구조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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