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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요 Apr 09. 2023

모든 심야형 인간을 위한 항변

책상머리상념 #11.

모두가 아침형 인간과 모닝 루틴을 이야기할 때,

일찌감치 포기한 사람이 여기 있다.


나는 심야형 인간이다. 인간이 아침형인지 저녁형인지 심야형인지는 유전자에 각인되어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독한 심야형 인간이다.


남들과 같은 5시간을 자더라도, 내가 가장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는 타임존은 새벽4시 취침-오전 9시 기상이었다.


내가 심야형 인간이 된 이유엔 유전적(?)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늦은 밤 퇴근한 아빠와 놀고싶었던 유치원생의 고집이 지금까지 습관으로 이어진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성장과정에서 대학생/대학원생의 고된 시험&과제 시즌도 큰 한몫했다.


나도 한 차례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노력해봤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심야의 조용한 몰입의 시간을 너무도 사랑했다.


아침의 좋은 점들을 설파하는 글들은 많지만

심야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글은 드문 것같다.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 되기 위해선 부지런한 새, 발빠른 개미가 되어야하기 때문일까.


아침형 인간은 성실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심야형 인간은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우리 사회는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합리화를 위한 아우성을 쳐본다.


내가 깊은 새벽의 밤을 사랑하는 이유는,

모두가 잠든 시간의 고요함이 있기 때문이고

그 고요함 속에 온전히 내 안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도 나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얕은 새벽녘의 아침은 부산스럽다.

이르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그런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차들의 소음과

곧 시작될 과업의 시간을 앞둔 초조함

그 모든게 나를 방해한다.


... 그렇게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아직 단잠에 빠쪄 뒤척이며 게으름을 피우는 묘한 배덕감과 쾌감도 놓칠 수 없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그 밤의 묘미를 뛰어넘는 재미나 즐거움을 주는 일이 아침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면 유독 침대에서 꾸물거리게 된다.


그렇다면 그 사랑하는 밤의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

하루를 되감아 재생한다.

일기를 쓰기도 하고, 이렇게 생각을 글로 옮겨보기도한다.

오늘의 좋았던 순간, 오늘의 나에게 아쉬웠던 점, 내일의 나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그런 것들을 정리해본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책을 읽기도, 영어공부를 하기도, 필사를 하기도, 관심분야 칼럼이나 논문을 슬쩍 보기도 한다. 요즘은 유튜브로 베이스기타와 타로카드를 야매로 배우기도 한다.


그런 생산적인 것 말고 단순 소비성 취미도 한껏 즐긴다. 게임을 하기도 하고, 웹툰과 애니와 만화를 보기도 하고. 음 오타쿠 기질이 있어 드라마나 영화 같은 실사보다 2D와 3D 그래픽을 선호한다.


아, 밤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악기를 연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학생 때 동아리방에서 심야에 피아노와 베이스를 연주하면 그렇게 운치 있을 수가 없었는데, 그 감성이 그립다. 훗날 돈을 많이 벌면 단독주택에서 살고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낮의 나는 꽤 시끄러운 편이다. 밝고, 신나서 방방뛰고, 동작도 목소리도 크고, 표정도 많고, 철없는 아이(같은 어른이)가 되기도 한다. 다음 날을 생각하기 보단 현재에 충실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밤의 나는 사뭇 진지하다. 사색에 잠겨있고(라고 쓰고 멍때린다고 읽는다), 생각에 깊이 빠져들고, 나른하거나 느긋하고, 칠칠치 못했던 낮의 나를 떠올리며 혀를 차기도 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나중의  모습을 그려보기도하고. 한번 앉거나 누우면 일어나기 귀찮아한다.


낮의 내가 바깥에서 에너지를 받아오면

밤의 나는 내면으로 에너지를 쌓는다.

그래서 쉬이 고갈될 틈이 없다.


최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한 분으로부터 ‘삶의 밸런스’를 취하는 방법에 대해 인상깊게 들었다. 단순히 워라밸이 아니라 조금 더 세부적인 밸런스에 대한 접근이었는데 예를 들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면 어린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한쪽 성별의 사람들만 많이 만났다면 반대의 사람들을 만나는 등.


그런 측면에서 나는 낮과 밤의 내가 밸런스를 맞춰주고 있는 것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증이 되어버렸을까! 아, 그렇다고 이중인격도 아니니 오해말라. 우리 모두 모순적인 모습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다만 그걸 조금 더 뚜렷이 인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자.


그래서 결국 이 긴 글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나는 심야형 인간이라고.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는 심야형 인간도 이렇게 어엿한 어른이라고! (?)


모든 심야형 인간들을 위한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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