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거니즘 일기
마스크를 쓰는 일이 일상이 된 지도 1년이 넘은 지금, 모두 안녕하신가요? 작년 이맘때쯤 저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계란 후라이를 먹었고, 커피는 항상 라떼를 마셨으며 친구들과 고기나 회파티도 자주했었죠.
막연히 내가 먹는 식탁 위의 동물들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에서 왔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동물들이 도살장을 거쳐 목을 베이고 털을 뽑혀야지만 나의 입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저는 일반적으로 동물을 사랑해왔고 친절하게 대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몇 번을 채식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반복한 경험이 있었고 그 정도 했으면 꽤나 괜찮은 노력이라고 생각하며 은근한 자부심도 있었죠.
그러다 문득 다시 동물을 입에 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끔찍한 도살장 영상이나 축산업의 탄소 배출, 붉은 고기의 해로움..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저에게는 계기가 되지 못했어요. 이미 저는 그 모든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육식이 종말할 것이라는 책도 읽었고, 태어나자마자 대형 분쇄기에 갈려 죽는 수평아리의 수가 년간 약 70억 마리라는 것도 알았고, 문어는 어린 아이보다도 지능이 높고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동물을 먹는 생활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왜냐면 동물은, '고기'는, '해산물'은 너무 맛있으니까요.
다시 비건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저 또 한 번 불어온 작심삼일이지요. '이번에는 달라,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고 다행히 이번에는 별탈 없이 1년이 넘도록 이 생활을 이어오고 있네요. (물론 여전히 조개는 고통을 안 느낄지도 모른다며 해산물 코너를 어슬렁거리기는 합니다만)
저번과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왜 이번에는 이렇게 오래 비거니즘을 이어가고 있고 이것이 내 삶의 중요한 축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니 바로 '주체성'의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단순히 동물석 식품을 피하고 음식에서 빼왔다면 지금의 저는 매일매일 어떻게 무엇으로 내 식탁을 채울지, 내 일상을 채울지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해요. 무엇을 먹을지, 먹지 않을지 선택하고 소리를 내서 '저는 ______는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해요. 그렇게 저는 저의 하루에 예전보다 많은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건강, 환경, 다이어트, 동물권.. 사람들은 많은 이유로 비건을 시작합니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점은 어떤 이유로 비건을 시작하든, 내가 식탁에 차리는 것들이 어떻게 오는지 인식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은 여러분의 하루를, 일상을, 삶을 더 풍요롭게 주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예요. 그리고 그렇게 나의 하루가 온전해질 때 우리는 주변의 약한 존재들에게 조금 더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동물을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를 넘어 스스로를 위해서 비건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렇게도 오래,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쭉 저는 비건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인간은 역시 이기적인 동물인걸까요.
그럼에도 동물들을 보면 한없이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드네요. 가만히 멈춰서 생각해보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듯합니다. 인간도 결국은 동물이니까요. 나와 비슷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겠죠? 그렇다면 사랑하는 존재를 먹는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처리해야할까요?
계란을 먹기 위해 1년간 약 70억 마리의 수평아리를 태어나자마자 죽이는 것. 태어난지 한 달이 되면 완벽한 고기가 될 수 있도록 품종을 개량하여 '치킨'을 얻어내는 것.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마취 없이 거세를 시키고, 강제로 꼬리와 부리를 자르는 것. 우유를 얻기 위해 강제 임신과 출산, 어미로부터 새끼를 빼앗아 도살장으로 보내기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 한 마리당 평생 만들 수 있는 양이 5g인 벌의 꿀을 가래떡에 푹 찍어먹는 것. 인간과 똑같이 고통을 느끼는 '물고기'를 신선도와 맛을 위해 산 채로 즉석에서 살갗을 떠내는 것.
만약 누군가가 개와 고양이를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동물학대 기사에 분노해본 적이 있다면, 돼지나 소의 영상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금붕어를 먹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그 누군가들은 모여서 한 번쯤 고민해볼만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혹시, 당신도 동물을 사랑하시나요? 아, 그렇다면 당신도 '우리'네요.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나 역시 당신과 같은 편에 서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더 고민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