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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Jul 05. 2022

죽기 좋은 날

후덥지근하다. 여름이다. 살면서 어느덧 서른 번째 맞는 여름이건만, 왜 또 이리도 새로운걸까. 조금만 걸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짜증이 퍽퍽 난다. 집안에서는 오줌을 싸지 않겠다고 시위하는 개님들 덕분에 이 날씨에도 매일 밖을 나가고 있다. 아, 그냥 픽 죽어버리면 좋으련만. 산책 따위 할 필요없이. 더운 날씨를 느낄 필요 없이. 차디찬 몸뚱아리로 그렇게 세상에 마지막 모습을 남기려면 좋으련만.


어제는 한강에 갔다. 매일 아파트 단지만 산책하는 우리 개님들에게 새로운 곳을 보여주고 싶어 이 덥고 습한 날씨에 개 물통이며 똥봉투에 장난감이며 바리바리 싸서 개 두마리를 싣고 차를 끌고 여의도까지 갔다. 며칠 전부터 불이 들어와 있는 기름 없단 표시가 이제는 정말 마지막 경고인 것 같아 '주유소 경유' 라고 내비에게 외쳤다.


'가는 길에는 주유소가 없어요.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안내합니..' 


이런 개같은. 아니다, 개같다는 말은 옳지 않다. 개야말로 내가 인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랑하는 존재 아니던가. 오늘도 결국 개님들을 위해 여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가장 가까운 주유소는 무려 1.7km 떨어진 곳. 이대로 엑셀을 밟아서 전봇대를 박고 죽어버릴까. 뒷좌석에 두 마리의 개만 실려 있지 않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텐데 말이다. 꾸역꾸역 주유소를 향해 갔다. 기름값이 더럽게 비쌌다. 오만원을 넣었더니 겨우 반쯤 기름통이 채워졌다. 


한 시간만에 도착한 한강은 아름다웠다. 덥고 습한 날씨는 욕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나왔지만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 그리고 그 아래로 반짝반짝 비치는 건물의 불들과 대교. 이대로 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뛰어들어 하나의 점으로 사라지고 싶다. 그러기엔 물에 퉁퉁 불어 너무 끔찍한 형상이 되겠지만.


강 위로 순찰배가 지나간다. 생각보다 느린 속도로 휘적휘적 강을 지나고 있다. 


"너가 뛰어내리면 아마 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너를 구하러 갈거야"


친구가 말해준다. 몹시 미덥다. 저 속도로 어떻게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한단 말인가. 자살을 하고자 마음 먹은 사람은 실수로 물에 빠지는 사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물에 떨어진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떨어져버릴테니까. 그리고 더 깊이 빠져버린다. 이미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테니. 저런 속도로는 아무도 구하지를 못한다.


만약 자살을 하게 된다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게 가장 낫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다. 남에게 너무 피해가 가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자살하는 마당에 남에게 끼칠 피해까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무도 없는 새벽시간에 미리 소방서에 신고하고 뛰어내리면 괜찮지 않을까? 


십오층이 되었건 이십층이 되었건 일단 뛰어내리고 나면 1-2초 내로 지면에 닿아 죽게 될 것이다. 혹시 '아 시발 죽지 말걸' 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아 시바아알 - ' 쯤에서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 될터이다. 그러니 후회는 없다. 


목을 메거나 물에 빠지는 것은 그것보다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많이 줄 것만 같다. 행여나 목을 메고 발 밑에 의자를 박차고 나서야 죽지 말 걸하는 생각이 든다면? 한강에 뛰어내려 깊이깊이 물 속으로 잠기는 순간 갑자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야말로 억울할 것이다. 손목을 그어 죽는 방법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단 어지간히 깊게 긋지 않고서는 죽기 힘들뿐만 아니라 왠만한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죽음에 도달하기 어렵다. 나에게 그만한 강한 정신력과 의지가 있다면 안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힘맥아리 없이 픽, 하고 - 하나의 실수처럼 그렇게 죽고싶을 뿐이다.


비는 올듯 말듯 오지 않는데, 습도는 점점 올라가 목이 턱턱 막힌다. 습도에 목이 메어 죽을 수도 있을까? 매일매일이 죽기 좋은 계절이고 죽기 좋은 날씨다. 오늘 역시도, 죽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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