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과 연결을 찾아서
선택과 집중, 정석과도 같은 이야기다. 흠잡을데 없이 맞는 말이다. 개인의 에너지와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선택해서 집중할 때 고효율로 뇌를 최적화하여 성과를 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귀에 피가 나도록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선택과 집중을 너무나도 절실하게 하고 싶었다. 미대에 가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어떤 과를 가야하는지 수능 전날까지 고르지 못했다.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과 중 가장 좋은 학과를 우선 선택했다.
대학에 입학하며 다짐했다, "좋았어, 지금까진 방황했지만 오늘부터는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니까."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의 관심사는 점점 더 방황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너무나 사랑했던 문학에 다시 불이 붙어 영문학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래, 학사 때까지는 자신의 진짜 업이 뭔지 못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석사는 영문학이다. 멋진 번역가가 되겠어. 언젠가 책을 내겠어. 영원히 종이와 함께하겠어."
영문학에 푹 빠진 날들을 보냈다. 셰익스피어와 까뮈를 읽으며 보냈던 날들을 기억한다. 문학이 내 인생에 전부라고 생각했다. 글에 죽고 글에 살리! 그러다가 우연히 한 꽃집에서 일을 하며 식물에 매료되었다. 급속도로 문학은 나의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식물의 신비에 푹 빠져 식물학과 생물학 책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꾸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미대를 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아니야 이제 겨우 20대 중반인데, 늦은 때가 어디에 있어. 지금이라도 이 열정을 찾아서 다행이야. 지금이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할 시기야" 라고 생각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결국 비슷한 레퍼토리이므로 간략히 요약하겠다. 1년을 못가 식물에 대한 관심도 끊어졌고 키우던 식물까지 모조리 죽였다. 돈을 벌어야 하니 일단 영어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아 영어교육학으로 석사를 가겠다고 다짐한다. "영어 유치원을 차리자, 미술과 접목하면 대박 날 것 같은데? 돈다발에 파묻히면 어떻게 하지?"
물론 그 마음은 6개월을 가지 못했고, 돌연 미학을 전공하겠다며 다시 석사 준비를 하다가 또 갑자기 변호사가 되겠다며 로스쿨 준비를 하다가,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물론 그 중간에 비건 식당도 잠깐 운영했다. 이게 대체 무슨 흐름인지.
"선택과 집중"
이 다섯 글자는 내 인생의 오랜 미션이 되었었다. 이번엔 정말이야, 이번엔 정말이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선택은 어려웠다. 세상에 재밌어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관심이 가는 것도 너무 많았다.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분야만 파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동경했다.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 저런 장인이 될거야. 한 분야에 몰입해서 성과를 낼거야.
하지만 결국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 "너 대체 뭐 할라고 그래?"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도 궁금했다. "나는 대체 커서 뭐가 될까?" 그런 질문을 던지기에는 너무 커버린 것은 아닐까.
하나 둘, 제 갈길을 찾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여기저기 얉게 발을 담구며 보낸 시간들이 낭비로만 느껴졌다. 시간을 버리며 살았구나. 하지만 딱히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것을 따라갈 뿐이였다.
그리고 30대가 넘은 지금, 스스로에게 인생의 목표였던 '선택과 집중'을 뒤흔드는 질문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정말로, 삶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선택지만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