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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젤 Jan 14. 2022

[영화] 반쪽의 이야기(the half of it)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이렇게나 인문학적인 해석

"We had to get lost to be found."


@공식 포스터


The half of it, 2020
번제: 반쪽의 이야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로튼 토마토 97%


영화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나오는 사랑의 기원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그렇다. 플라토닉 러브의 그 플라톤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태초에 얼굴 두 개, 발 네 개, 손 네 개였고 온 주위를 볼 수 있는 완전한 모습이었고, 하나로서 완전했기에 사랑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신에 의해 반쪽으로 갈라지게 되면서 다른 반쪽 - "the half of it" - 을 찾아 헤매게 되었고, 그게 사랑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게 <반쪽의 이야기>.


"I know you" / @ official trailer


사랑의 기원으로 문을 연 영화는 고전 중의 고전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플롯을 따라간다. 짝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다른 이의 연애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다가 그걸 밝히고야 마는 플롯. 그러면서 그 삼각관계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는 이야기도 빼곡히 담아낸다.


"대화는 핑퐁 같은 거라고, 이 멍청아악" / @ offical trailer


이 영화도 그렇지만 오마주의 대상인 원작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주요 등장인물들 중에 특별한 악인이 없다는 데에 있다. 원작의 시라노와 크리스티앙과 록산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이에 대한 사랑을 응원하기도 하고, 다른 이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알면서도 응원하거나 측은하게 여기기도 한다.


폴을 좌절시킨 엘리의 고백 / @ 공식 트레일러


영화에서도 엘리와 폴과 에스더는 서로 사랑하다가 질투하다가 서로를 응원한다. 엘리를 괴롭히는 무리나 에스더의 약혼자가 있기는 하지만 - 이 역시 원작과 유사한 설정 - 극의 진행에 걸림돌이 될만한 수준은 아니고, 주요 인물들 중에서는 크게 악인이 없다. 서로 이해하고 응원하고, 그렇게 귀여우므로.


내가 맺어준 커플인데.. 시무룩 / @ official trailer


영화에선 유독 장면도 오디오도 여백이 많은데, 아마도 대화 중의 정적을 느끼고 시선의 흐름을 충분히 좇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 / @ official trailer


가상의 장소이기는 하나 황량한 동부 시골의 마른 나뭇가지나 기차역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의 쓸쓸함은 흡사 러브레터를 떠올리게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부모 아래의 가장 역할이라던가 그 와중에 재능이 있고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나 학교에서 가장 특별한 짝사랑의 대상과 내가 유일하게 비밀리에 지적으로 통하는 상대 - 학교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한 애가 나랑만 말이 통한다는 그런 판타지 - 라는 설정의 짜릿함은 상황과 캐릭터의 매력에 이입하게 하기 충분했다.


스쿼하미시의 기차 정거장 /@ official trailer


그러면서도 인종적 소수자와 성적 소수자의 고독함, 빈곤함에서 오는 고민과 쓸쓸함, 사랑이 그 사람의 외견과 행동을 좋아하는 것과 그 사람의 생각과 품성을 좋아하는 것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 사실 영화 속의 폴 처럼 상대를 존중하기만 한다면 전자라고 해서 사랑이 아닐 이유도 없다 - 에 대한 고민들을 충분히 깊게 고찰하고 담아낸다.


어벙해 보이는 미식축구부 2군 - 하이틴인지 하이틴 비틀기인지 - 폴은 의외로 예민하게 감정을 읽어내며, 기민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정확하게 정답을 말한다. "너, 에스더 좋아하지, "와 "평생 다른 사람인 척하며 사는 건 너무 힘들 거 같아"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셋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는 분기점이자 새로운 관계의 시작점이 된다. 끝내기 터치다운처럼.


"평생 다른 사람인 척하며 사는건 너무 힘들거 같아" / @official trailer
그리고 진짜 터치다운 / @ official trailer


결국 이 셋은 돌고 돌아 사랑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과 누구를 사랑하는지 한번 더 돌아보며 생각하고 응원하다가 그렇게 새로운 삶의 문을 연다. 누군가는 새로운 직업으로, 누군가는 새로운 지역으로, 누군가는 새로운 미래로.


영화 속 엘리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돌고 돌아 스스로를 찾기 위해서는 한 번쯤 길을 잃어야 - we had to get lost to be found -  할 필요도 있다.



Here we are,
took so long,
came so far.

I slept half the way on your shoulder.
Safe and sound
as the night tore and spun around,
and we had to get lost to be found.

- Ellie's song


결국 사랑은 인내하고 온유하며 겸손하게 완벽한 반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혼란하고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과감하게 좋은 그림을 위대한 사랑을 위하여 망칠 수 있는 용기이다.


Love isn't patient and kind and humble. Love is messy, horrible and selfish and bold. It's not about finding your perfect half. It's trying and reaching and failing and, love is, be willing to ruin your good painting for the chance of great love.


외로움과 결핍 - 반쪽에 대한 갈망 - 에서 비롯된 것이 상대를 보듬고 아끼는 사랑이므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외로움과 결핍부터 온전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리라. 채워줄 완벽한 반쪽 - 너의 속성 -  아닌, 비워진 반쪽 자리 - 나의 결핍 - 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감독이 직접 쓴 각본 <반쪽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누군지를 오롯이 알고 나로서 살 때, 소통도 사랑도 진실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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