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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젤 Jan 17. 2022

[영화] 먼 훗날 우리 (Us and Them)

2018년의 첨밀밀, 슬프고 따뜻한 해피엔딩

"I missed you, 내가 널 놓쳤다는 말이야."


@공식 포스터


Us and Them, 後來的我們, 2018
번제: 먼 훗날 우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로튼 토마토 100%


이 영화의 영제는 Us and them인데, Us and them이라고 하면 어쩐지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생각난다. [1] 혹시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있나 했는데, 연관성을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에서 us and them 은 전쟁에서의 아군과 적군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혹은, 지금의 우리와 그때의 우리가 그만큼이나 유리된 존재라는 걸까.


Me and you / God only knows it's not what we would choose to do
...Black and blue / And who knows which is which and who is who?

<Pink Floyd - Us And Them> 가사 중


흘러간 시간 속의 어떤 관계와 그 속의 나는 때로 그 누구보다도 낯설어서 소름 돋을 때가 있다.




"저기요, 이거 그쪽 표 아니에요?" 의 클리셰 / @ 공식 트레일러


나는 이 영화가 2018년의 첨밀밀이라 생각한다. 두 시골 청년들의 짠내 나는 대도시 생존기. 2007년 상경하는 기차에서 만난 같은 고향의 두 청춘들. 흡사 첨밀밀의 마지막 장면 - 이자 오프닝 - 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2007년부터 10년의 시간을 그린다. <첨밀밀>의 1996년에서 <먼 훗날 우리>의 2018년으로 2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오며 청년들의 생활상은 조금 더 구체화 되었고, 밥벌이의 고충과 도시 노동자의 생활상에 대한 영화의 표현 방식도 조금 더 적나라해졌다.

 

네모지다 못해 블록 게임판 같은 쪽방촌의 인간 군상 / @ 공식 트레일러


첨밀밀이라는 힌트에서 알 수도 고 영화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두 청춘 젠칭과 샤오샤오는 고군분투하다가 간헐적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마주한다. 때로는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때로는 슬프고 화나고 경악스러운 순간들과 함께.


썸네일의 이 귀여운 키스 장면에 안 넘어가는 사람이 있었을까 / @ 공식 트레일러


뛰어와 안기는 샤오샤오는 모두의 마음에 사랑스러워 보이기에 충분했고, 둘의 추억이 잔뜩 담긴 소파를 버릴 땐 모두가 아쉬워할 만하다. 영화가 120분으로 꽤 긴데, 장면마다 추억이 잔뜩 송골송골 맺혀 떨어지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주동우가 연기를 너무 잘하고 아주 귀엽다.


추억의 소파 / @ 공식 스틸컷


하지만 그 추억들로 도시 살이의 어려움과 둘의 헤어짐을 막을 수는 없다. 둘은 셋집에서도 쫓겨나고, 젠칭은 만드는 게임마다 망하고, 불법 게임 유통으로 감옥도 갔다가, 샤오샤오가 집을 나가기도 하고, 급기야는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비를 걸다가 둘이 몸싸움을 하는 지경까지 되어 아주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헤어지게 된다. 둘은 가장 엉망인 모습 - 중독, 도박, 외도, 주취와 폭력 -으로, 가장 엉망인 방식 - 사라짐 -으로 마지막 헤어짐을 맞이한다.

 

"지금 이렇게 행복한데, 설마 우리가 헤어질까?" / @ 공식 트레일러
... / @ 공식 스틸컷


마지막 헤어짐을 겪고 나서 한참 뒤에 젠칭은 결국 둘이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게임을 만들어 성공시키는데, 그리고 나서 다시 명절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아버지와 샤오샤오를 만나 베이징에 집을 사두었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도 샤오샤오도 제안을 거절한다.


그렇게나 베이징에서 집 있는 남자와 만나서 정착하는 게 꿈이었던 샤오샤오 - 그래서 안정감을 찾아 연애를 시작했다가 몇 번의 연애 실패를 경험하기까지 하는 - 인데도 제안을 거절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둘이 주고받은 시간과 상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샤오샤오가 원한 건 집의 껍데기가 아닌 안정과 가정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House 가 아닌 home.

 

2007년, 아버지가 샤오샤오를 초대해 단란한 식사를 함께 했던 때 / @ 공식 트레일러
헤어진 뒤,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하지만 난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야" / @ 공식 트레일러


샤오샤오에게 이미 젠칭은 안정적으로 가정을 함께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 - 젠칭의 아버지와 함께 한 가족적인 추억들 - 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이다. 자기를 여태까지 살게 한 과거를 좀먹을 수도 있는 미래의 위험. 설령 영영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후에 젠칭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뒤 나오고, 아버지가 쓴 편지도 언뜻 비치는데, 너는 여전히 우리 가족이다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 - 하시면서 따뜻한 말을 편지로 전하는 대목이 있다. 고향에도 명절을 같이 보낼 가족이 없는 샤오샤오는 물론 젠칭과 아버지에게도 그 관계가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둘은 한참 뒤에 다시 재회한다. 재회 시점의 장면은 흑백으로 처리된다. 이 장면 처리가 인상적이다. 그만큼이나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호텔 장면은 보는 사람의 기분이 좀 미묘해지긴 하지만, 설정상 자의적인 선택은 아니다. / @ 공식 트레일러


둘은 차를 타고 가며 한참 좋았던 때의 얘기를 하고, 샤오샤오가 만났던 그리고 만나왔던 엉망진창 전연인들의 얘기를 하고, 나랑 만났던 애들은 다 잘살더라, 너도 그렇지 않냐 얘기를 하고. 베스트 전여친상 받아야 된다며 웃고,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그러면서 잔뜩 이별의 소회를 나눈다.


이랬다면, 저랬다면 어땠을까 하며 아쉬움을 뚝뚝 흘리는 젠칭에게 샤오샤오는 넌 여전히 철이 없다며, 이랬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고 저랬다면 행복하지 못했을 거고 달랐다면 네가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을 거라며 미련을 딱 잘라낸다. 본인도 한없이 미련을 갖고 있는 눈망울을 하고서는. 그도 그럴 것이, 젠칭에게는 이미 부인도, 아빠에게 호텔방에 다른 사람 없는지 보여달라고 할 정도로 다 큰 아이도 있기 때문에.

 

@ 공식 트레일러


샤오샤오의 이 대사는 정말 잊기 어려운데, 다음과 같이 말하며 둘의 관계와 감정을 갈무리한다.


- 젠칭, I missed you.
- 나도 보고 싶었어.
- 내 말은, 내가 널 "놓쳤다는" 말이야. (I "missed" you)


즉, 이제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말.


난 이 장면이 20년의 시간을 건너온 첨밀밀의 마침표처럼 느껴졌다. What if에 대한 완벽한 대답(또는 방어). 지나온 길을 후회하지 말라는.


둘은 아마도 영원히 서로를 기억할 것이다. 그 또한 사랑이라면 그럴 것이다. 이전과 같은 종류의 사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나온 추억과 지나온 우리(them)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미련이 섞인 그런 애틋함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쿠키영상이 있다. 일반인들이 전애인에게 하는 말들. 후회되냐 나 살 뺐다 나 결혼한다 너무 보고 싶다 잘 지내라 나랑 결혼 안 할 거지 네가 원하던 사람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등등 다양한 원망과 그리움과 안녕을 비는 인사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게임을 통해서야 미안하다고 할 수 있던 젠칭의 모습을 통해 곱게 접어 지나오지 못한 지난 관계들에 대한 찌질함과 미묘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수 있었달까.


이 영화도 지난 몇 개의 영화들 [2] [3] [4] 과 같이 감독 - 유약영 - 이 각본을 쓴 사람과 같다. 사실 둘의 사랑 얘기는 그냥 건축학개론 수준일 수 있는데 - 대부분의 사랑 얘기가 그렇다 - 청춘의 공허함과 아등바등 살아남으려는 대도시의 삶, 작은 위안들, 마음의 정리 과정, 따뜻한 어른에게서 전해지는 온기, 이런 것들을 세세한 디테일과 눈빛과 소품과 공간들에서 잘 담아 놓았다.


[2] 반쪽의 이야기. 이 영화의 각본은 감독인 엘리스 우가 쓴 이야기다.
[3] 루비 스팍스. 이 영화의 각본은 루비 역할을 맡은 존 카잔이 쓴 이야기다.
[4] 6 Years. 이 영화의 각본은 감독인 한나 피델이 쓴 이야기다.


눈 밭에서 소회와 완벽한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리사 오노 - 원곡은 아니지만 가장 따뜻한 목소리였던 - 가 불렀던 I wish you love 가 떠오른다. 너에게 따뜻함이 함께 하기를 바라고, 눈송이가 떨어지는 때에 너에게 새로운 사랑을 오기를 바란다며, 지난 인연을 곱게 접어 보내는 그 마음. 지나간 모든 순간과 인연들에 대해 그저 잘 살라고 해주고 싶어지는 영화.


I wish you shelter from the storm
A cosy fire to keep you warm
But most of all
When snowflakes fall
I wish you love

<Lisa Ono - I wish you love> 가사 중


마음과 인연을 곱게 접어 잘 갈무리하는 장면이 슬프고 따뜻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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