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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Oct 31. 2018

취해서 들어가도 엄마가 없다.

아, 이런 게 자유구나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시절, 누군가 자취의 장점을 물으면 취해서 들어가도 엄마가 없다는 것을 꼽았다. 새벽 늦게까지 학교 근처를 배회해도 나를 잡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고, 숙취가 심해 아침 1교시 출석을 포기하더라도 누구도 잔소리하지 않았다.


작은 그 방 안에 내가 아니면 누구도 소리를 낼 사람이 없었다.

‘아, 이런 게 자유구나’ 싶었다.


시험기간이면 과방이 되었다. 여덟 번의 시험을 거치며 가장 크게 얻은 능력은 ‘벼락치기’인지라, 막차가 끊길 때까지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기 일쑤였고 친한 친구들은 수원, 김포, 과천 등 참 멀리도 살았다.


꽤 많은 친구들이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혼자 사는 집에 칫솔도 참 많았다.

그래서인지 늘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 같았다.


6년을 살았던 내 지난 자취방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한 건 대학을 졸업하면서이다.

학교 앞 자취방에서 무려 6년을 살았던 터라, 이사하는 날 기분이 이상했다. 말도 안 되게 패기롭고 정신없었던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 원래 뭘 잘 버리지 못하고 깨끗하지도 못한 성격 탓에, 언제 산 건지도 모르는 것들로 짐은 한가득이었다. 집안에 가득했던 먼지를 버리고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 중엔 버릴 것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기도 했다.




이사 후, 집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이제 자취의 단점이 됐다.

학교 내내 붙어 다녔던 친구들은 하나 둘 취업을 하거나, 취업을 위한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따듯하고 정신없었던 작은 자취방은 혼자의 물건만이 남은 차갑고 조용한 공간이 됐고, 벼락치기를 위로하며 마셔대던 맥주는 불합격의 나락에서 부서진 멘탈을 바로잡기 위한 소주로 바뀌어갔다.


취해서 들어가도 엄마가 없었다.


누군가 오늘도 고생했다며, 아무리 노력해도 티 나지 않는 나의 하루 간의 성과를 보듬어줬으면 했다. 뭐하러 이렇게 술을 먹었냐고 채근하는 엄마가 그 방안에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아무도 없다는 자유’는

어느새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으로 부쩍 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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