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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Nov 30. 2018

좀만 더 버텨봐, 남들 다 그렇게 산다.

남들처럼 사는 게 내 꿈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처음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열심히 했다.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이면 들어가서 어떤 분께 어떤 식으로 아침 인사를 건넬 지부터 생각했고, 사무실 안에서 들리는 농담에 누구보다 먼저 웃으며 반응했다. 일도 인간관계도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잘 해내는 사회인이 되려고 했다. 남들처럼.

한 달 정도는 새로운 자리에 익숙해지며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나’는 없어지고 있었다.


거의 모든 퇴근 길을 함께한 편의점 맥주, 네캔에 만원 때로는 여섯캔에 만원.


인턴이라는 신분으로 경험한 몇 개의 좋았던 기억이 나를 첫 번째 직장으로 이끌었다. 무조건 대기업, 공기업을 바라보기보단 나는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협소한(당시에는 협소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몇 개의 경험에 의존해, ‘난 무조건 A라는 분야에서 일할 거야!’라는 목표를 세웠다. 몇 번의 불합격 끝에 결국 사무실 책상 하나를 차지했다. 강남에 위치한 10층짜리 건물의 9층이었고, 열정과 끈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의 열정과 끈기 속에서 나도 열심히 했다.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 업무의 경중이나 선호를 따지자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무언가 어디엔가 그 어떠한 의미라도 하나는 가져야 하는데, 그걸 찾을 수가 없었다. 뭐가 문제인지 되짚기 시작했다. 분명 A 분야에서 일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지금껏 경험해온 것들이 모두 A와 관련된 것이었고 이를 즐겁게 해냈으니, 그 분야에 속하는 직장에 들어가서 하게 되는 일들에도 애정과 열정을 가질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이 사고 과정에 있어 문제가 되었던 것은 A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정한 A라는 것은 단지 한 산업 분야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역할에는 어떠한 업무가 수반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빨리 취직은 해야겠고, 그렇다고 아무 데나 닥치는 대로 가고 싶진 않고, 스스로가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래서 자꾸 삐끗했다. 내가 해낸 일이 다른 누군가의 공으로 치사되는 것이 싫었고, 여기서 버틴다면 언젠가 오를 수 있을 자리들도 하나도 탐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졌다. 크게는 기획안을 작성할 때나, 작게는 SNS에 업로드될 원고를 작성하며, 내가 선호하는 방향으로의 디벨롭보단 그것을 컨펌할 상사가 꼬투리 잡을만한 것들을 제거하기에 급급했다. 하물며 원고를 처음부터 뒤집어엎어야 할 때를 대비하여, 2안, 3안을 미리 만들어 놓기도 했다. 상사가 고르는 것이 내가 며칠을 고민해 만들어낸 1안이 아닌, 보고 직전 10분 만에 만들어낸 3안일지라도 그 결정에 크게 토 달지 않았다.

“아 네, 그럼 그걸로 진행하겠습니다”하며 불필요한 추가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질 무렵, 그만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생각을 주변에 말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좀만 더 버텨봐”,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사실 지금까지 쭉 남들이 사는 방식을 보고 살았다. 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면 평범하게는 살 수 있겠지 하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걸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말하면서, 정작 폭설을 마주할 때면 두꺼운 눈 아래 혹시 무언가가 있진 않을까, 미끄러지진 않을까 두려워 남들이 밟아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떻게든 남들처럼 아침 아홉 시에 앉을 수 있는 책상을 갖길 원했다.


그렇게 정말 '남'들처럼 살며, 결국 ‘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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