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바깥은 여름>
추운 겨울에 이 책을 읽었다. 겨울의 공허를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여름은 몹시도 그리운 계절이었다. <바깥은 여름>, 왜인지 모르게 겨울만큼 시린 제목이었다. 책은 제목을 닮아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한동안 감정이 메마른 상태에 시달렸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그런 무감각한 상태. 차라리 실컷 울기라도해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구역질이 날 정도로 묵직한 슬픔이 몇 번씩이나 차올랐다. 이 작품은 일상적인 배경과 어디에선가 존재할 법한 인물들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인물들은 모두 상실이라는 아픔으로 마주 보고 있다. 공간과 인물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뛰어나게 섬세하고 풍부해서, 마치 내가 살면서 잃은 것들과 앞으로 잃어야 할 것들을 직면하고 있는듯했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 구성은 나를 상실의 늪에서 쉽게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 사 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매일 밥을 먹었다. 드물게 손님이 오면 거실에 상을 폈지만 우리끼린 대게 식탁을 이용했다. 우리 부부는 등받이가 없는 벤치형 의자에, 영우는 유아용 접이식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입동>에서는 전셋방을 전전하던 부부가 처음으로 가진 집에서, 두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아이 영우와 소소한 일상을 살던 어느 날 사고로 영우를 잃는다. 그날 잃은 것은 영우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낸 모든 일상을 잃는다. 어떤 죽음의 여백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나 갈망하던 아이도 집도, 공간도 순식간에 모든 의미를 잃는다. 현실은 너무도 가혹하다.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단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다. 그녀는 남편을 잃었고,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남편이 구하려 했던 아이 누나의 편지를 받고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그런 그녀를 껴안고 같이 울어주고 싶었다. 누군가의 삶에 뛰어드는 순간에 당신도 얼마나 많이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을까. 문득 세월호 사건이 겹쳐졌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제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내어준 선생님. 당신들의 희생정신에 나는 또다시 가라앉고 아득해진다.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는 언젠가 떠나야 하고, 떠나보내야 한다. 어쩌면 이별은 순환하는 삶의 진리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예고 없이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고 파괴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유대하고, 사랑하고, 또 많이 안아주며 함께 이 세상을 견뎌야 한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김애란 작가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