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악랄함이 두드러지는 영화
<미키 17>입니다

by 일우

오랜만이네요. 관객에게 물음을 던지는 영화. B TV에 쿠폰이 있어서 천 원 남짓 결제하고 봤어요. 보고 나니 최근에는 직관적인 영화만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스토리가 바로바로 이해되고, 플롯이 한눈에 들어와서 다음을 짐작하게 하는 영화. 보고 나서 뒤가 없는, 가뿐하게 엉덩이가 떨어지는 그런 영화말입니다.


왜, 집에서 영화를 관람하게 되면 중간에 한 번은 자리를 뜨잖아요?


화장실을 가서 그럴 수도 있고, 중간에 전화가 와서 그럴 수도 있고, 엉덩이를 떼는 이유야 만들면 다 이유죠. 그런데 그런 이유들 말고 가슴이 답답해서, 혹은 토하고 싶은데 시원하게 토사물이 나오지는 않고, 속이 메스꺼운 채로 앉아 있는 기분 아세요?


그런 이유로 저는 영화를 두 번 멈춰 세웠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제게는 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뺄 수 있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고 리프린트 된다는 설정을 보여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설정이 독특합니다.


사람의 악랄함을 보여주기 적합한 설정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거의 첫 부분에 주인공의 손이 잘립니다. 우주선 안의 사람들은 평화롭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뒤로 주인공의 손이 날아갑니다. 그 장면이 영화 전체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의 대가 아들러는 세상에 단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이상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백색인>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손가락이 잘려서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는데, 손가락을 주운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놀듯이 가지고 다닙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다고 이해하면 마음이 편안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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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에서는 미키를 익스펜더블(소모품)이라고 부릅니다.


익스펜더블은 사라져도 되거나, 대체 가능한 존재를 말합니다.

위험한 일을 하다가 대신 죽는 것.

그것이 주인공 미키 반스의 직업입니다.


미키는 죽어도 다시 태어납니다. 기억은 벽돌에 저장해 두고 몸은 리프린트 합니다. 영화는 반복되는 죽음을 통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회가 부여한 역할만이 내 존재의 이유일까요? 나는 쓰임을 통해 존재할까요? 존재하기 위해 쓰임이 있어야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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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반부에서 미키가 복제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똑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입니다. 복제된 미키는 자신의 삶이 소모품이 되는 것에 '반발'합니다. 그 부분이 묘한 쾌감을 줍니다. 결국, 복제된 미키로 인해 사회 '시스템'이 바뀌거든요.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작게는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미키1일수도 미키3일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두 번 멈추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소파에 기대고, 편안하게 앉아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그게 새삼 부끄럽네요.


저는 영화를 보고 서늘하게 위로받았습니다. 마지막 미키의 대사가 머릿속에 남습니다. (너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야), 이제 행복해져도 괜찮아.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은 미키 반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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