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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Nov 15. 2017

돌아갈 곳이 하나 늘었다

오로빌 사람들


지난 9월 갑자기 갔던 오로빌, 지금은 또 갑작스레 귀국, 영국행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일이 예상을 비켜가고 계획을 벗어나고 있다.

혼란스럽지만 지금 필요한 건 유연성과 개방성.

흐르는 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L

갑작스러운 귀국에 인사를 못하고 온 몇몇이 있는데 L은 그중 한 명이다. 본국에서는 선생님이었고 몇 년의 캄보디아 생활, 그리고 지금은 오로빌리언이다. 한국도 방문했었다고 한다.

농장에서는 1년여 일했다고 하는데 모든 일을 척척 해낸다. 흙을 매우 아끼고 좋아한다. 흙을 만지는 손길에서 충분히 느껴지고도 남았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이 일했는데 항상 졸졸 따라다니면서 배웠다. 일을 잘 가르쳐주기도 했고 희한하게 같이 일하는 날은 노동의 강약이 있었다. 많이 힘든 일과 조금 힘든 일. 그래서 같이 일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개 때문에 놀라서 넘어진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오토바이로 경호해주겠다고 말해준 사람.

그때까지도 몰랐다. 그게 마지막일 줄. 내 귀국은 그렇게 갑작스러웠다.

오로빌에 돌아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A 

농장의 분위기 메이커.

역시 농장 일을 훤히 알고 있고 일도 잘한다. 50대 후반으로 가족들은 본국에 있고 혼자 오로빌에 있는 것 같았다.

농장에 처음 간 날, 말도 걸어주고 일도 가르쳐주고 편하게 대해줘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아침 먹을 때 항상 커피를 내려주던 사람. 그 커피가 없었다면 농장의 고된 일을 못 버텼을지 모른다.

마지막 날, 비가 많이 오는 아침, 출근과 퇴근길에 나는 그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었다. 개 때문에 놀라서 넘어진 일이 있은 후 A가 아침에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주었다. 처음 오토바이에 태워준 날이자 나에게는 농장의 마지막 출근길이 되었다.


M

여러 번의 엇갈림이 있은 후에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언제나 정량과 위생을 강조하고 음식의 모양까지 신경 쓰시는 분.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텐데도 본인의 연금으로 생활 가능하다며 무보수로 일하신다.  

진정 오로빌 정신이다. 더 많이 가지려 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가진 것을 나누는.

일하는 동안 잔소리와 지적도 많이 하셨지만 먹을 것을 꼭 한 접시 챙겨서 먹고 가게 하셨다. 그 고마움 때문에 몇 번의 엇갈림에도 불구하고 꼭 얼굴 보며 인사를 하고 싶었다.

고령인데, 부디 다시 볼 때까지 건강하시기를.


R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다.

장기 자원봉사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아 체류하고 있다.

주방용 캡을 쓰고 있을 때는 젊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벗은 모습을 보니 흰머리가 제법 있었다. 주방에서 보여주었던 여유, 배려, 웃음은 그런 연륜에서 나왔던 모양이다.

주방일도 어찌나 잘하는지. 나의 서툰 모습과는 완전히 비교되었다. 내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어 척척 도와주기도 했다. 항상 방실방실, 그리고 호탕한 웃음. 덕분에 그분과 같이 일하는 날은 든든하고 즐거웠다.

본국에서 어떤 일을 했고 오로빌에 온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런 식상한 질문들은 나중에 해야지' 하던 차에 인사도 못하고 갑자기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오로빌은 '이상향'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 있는 곳에 갈등과 모순 그리고 욕심' 이 있기 마련.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가지, 오로빌은 '창작의 장'이다.

예술 감각과 손재주만 있으면 아이디어와 손기술로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곳, 아이디어를 현실로 창조해낼 수 있는 곳이다.

오로빌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손으로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만들 줄 알았다.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고 옷을 만들고 집을 가꾸고 도자기를 만들고 꽃과 나무를 가꾸고 지식을 생산하고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고 유리 공예를 하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악기와 음악이 있다.

학교에서도 신체 활동을 많이 시키고 악기와 손기술 익히기는 기본이다.


두 달여 지냈지만 2년은 산 것 같다. 작은 생애 주기를 겪었고 다양한 가치관과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창작자이다.


앞으로 어디를 어떻게 헤매고 다닐지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어렵다. 하지만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늘었다.


오로빌, 새벽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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