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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Nov 03. 2017

자나 깨나 개조심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아침 6시 20분, 농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신선한 바람을 만끽하고 있을 때 개가 내 앞에 가는 자전거를 어슬렁거리다 갑자기 나한테 달려들었다. 공포에 질린 나는 자전거와 함께 나뒹굴었다. 

앞에 가던 사람, 뒤에 오던 사람도 내 상태를 살피러 왔다.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핑 돌았다. 내 인생에서 이런 쇼크는 처음이었다. 

내가 이렇게 놀란 건 지난주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역시 자전거를 타고 아침에 농장을 가는데 개가 앞에 가는 자전거를 얼쩡거리다 돌연 나한테 돌진해서 종아리를 물었다. 이번과 똑같은 상황. 단지 물리고 안 물리고의 차이. 자라 보고 놀란 가습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난번에 물렸던 상황과 너무도 똑같은 모습에 화들짝 놀란 것이다. 

지난번에는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이었지만 이번에는 반바지에 슬리퍼였으니 물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공포가 더 심했다. 내가 넘어지지 않았다면 그 개는 나를 물었을 것이다. 


길바닥에 늘어붙어 늘어지게 하품하던 개들이 많아서 인도에 있는 개들은 다 순하다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농장 주인 덕분에 농장에 도착해서 처치를 잘했다. 흐르는 물에 상처 부위를 비누로 세척하고 건조한 후 소독약을 바르고 솜을 덧댄 후 밴드로 마무리. 처치하는 손놀림이 아주 정확하고 깔끔했다.

다음 날, 병원에서 다시 드레싱을 받았다. 50루피. 우리로 치면 간호조무사 같은 분이 처치해줬는데 농장 주인의 솜씨가 훨씬 나았다.  


개의 공격을 받은 건, 두 번 다 이른 아침. 인적이 뜸해서일까 아침 정기가 좋아서일까. 오토바이를 타면 괜찮을까? 안타깝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오토바이를 타도 가도 갑자기 달려드는 개를 피하려다 넘어지고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Santé
프랑스어, 건강.
오로빌에 있는 병원, 우리나라의 의원(클리닉) 정도 되는 것 같다. 

병원비: 50~600루피(약 900~10,500원)
간단한 처치는 50루피 
의사 면담 및 처방전은 300루피(+α)

나 같은 경우는 별다른 처치 없이 처방전만 받아서 300루피(약 5,200원)
게스트 요금이 이렇고 오로빌리언들은 훨씬 저렴.
오로빌리언들은 매달 건강보험료를 낸다.


병원을 다시 찾았다. 피도 안 났고 상처도 깊지 않고(살짝 물린 흔적만 있다) 고통도 없고 이상 징후도 없어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난번 개에 물린 게 찜찜하다. 더구나 잠복기가 1달에서 1년이라고 하니 불안했다.

의사가 친절하지는 않았다. '바로 왔어야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데 시간이 너무 흘렀다',  '물렸던 개를 다시 본 적이 있는가',  '어디에서 물렸는가',  '개가 어떻게 생겼는가' 등을 물어보고 처방전을 써주었다. 집에서 기르는 개인지 떠돌이 개인지를 알아보려는 질문인 것 같다. 개의 생김새를 물어본 건 개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건가?

처방전을 가지고 '쿠일라팔라얌' 마을에 있는 건강 센터(Health Centre)에 가서 약을 사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쿠일라팔라얌에서 1주일을 보낸 건 참 잘한 일이다. 그 마을의 주요 장소를 안다는 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준다.

 

나는 어떤 동물도 못 만진다. 개를 예뻐해주고 싶어도 만지지 못하니 애정 표현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개가 다가오면 겁부터 난다. 그런데 이번 일들로 개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길에서 개를 보면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 머리칼이 주뼛 선다. 


개를 키우는 분들은 부디 때맞춰 예방 접종시키고 외출 시에는 개에 목줄 꼭 하시기를! 나 같은 사람에게 길거리에 있는 개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공포의 대상이다. 그리고 주인 앞에서는 온순할지라도 낯선 사람에게는 강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본성이 있다는 것도 꼭 기억하시기를! 꼭꼭꼭!!!


인도에서 개에 물렸을 때

최대한 빨리 비누로 세척한 후 병원으로 가서 주사, 처방전 등 의사의 지시를 따른다.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나는 것. 이것이 나이 먹는다는 것.  


숱하게 다치고 넘어지면서 온몸이 뻐근하고 상처 투성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40대라 몸이 근근이 버텨내주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에 가해지는 충격과 그에 따른 후유증은 골이 더 깊어지겠지.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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