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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Oct 31. 2017

벽돌 두 장

'이불 킥'을 부르는 흑역사 한 페이지



이불 킥
창피한 기억이나 실수가 생각나 잠자리에서 이불을 확 걷어차는 행위


"매우 아름다운 벽이군요."
"벽 전체를 망쳐 놓은 저 잘못된 벽돌 두 장이 보이지 않나요?"
"물론 내 눈에는 잘못 얹힌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더없이 훌륭하게 쌓아 올려진 998개의 벽돌들도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석 달 만에 처음으로 그 두 개의 실수가 아닌, 벽을 이루고 있는 훌륭하게 쌓아 올려진 수많은 벽돌들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 잘못 놓인 벽돌의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에는 제대로 놓인, 완벽하게 얹힌 수많은 벽돌들이 있었다. 게다가 완벽한 벽돌들은 두 장의 잘못된 벽돌보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았다.
전에 내 눈은 오로지 두 개의 잘못된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 벽을 바라보는 것조차 싫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것도 싫었다. 그 벽을 폭발해 부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나는 훌륭하게 쌓아 올려진 벽돌들을 볼 수 있었다. 벽은 전혀 흉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 방문객이 말한 대로 '매우 아름다운 벽'이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중에서



능통하지는 않지만 오로빌에서 영어로 생활하는 데 문제없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놈의 영어가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파이낸셜 서비스에서 음식 값을 이체하기 위해   이체받을 계좌를 알려주는 것까지는 좋았다. 계좌번호를 확인한 직원이"tmxpdlxm dhqm zhfldk?"라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분명 영어를 했을 텐데 외계어를 하는 것 같았다. 단 한마디인데 하나도 못 알아먹었다.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나를 보더니 바로 한국인 직원을 불렀다.

‘나, 영어 할 수 있어. 단지 네 발음 하나를 못 알아들었을 뿐이야. 그러니 다른 사람 부르지 말고 계속해.’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는 사이 한국인 직원은 벌써 내 옆에 섰다. 

아! 이 참담함.(은 그러나 또 일어났다.)


농장에서 키운 작물을 바로 식당에서 요리하는 곳을 찾았다. 메뉴는 그날그날 식당에서 정하고 손님은 시간 맞춰 자리에 앉아있으면 된다. 농장과 식당 운영자가 같은데 회원들에게는 1주일에 한 번 무상으로 채소를 제공학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로 카드는 안 받고 현금만 받았다. 그 어디보다 오로빌의 정신을 잘 실천하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현금만 받는다는 말에 같이 간 오로 빌리언들도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뉴커머를 포함, 오로빌리언들은 카드를 쓰지 않고 종이에 적으면 나중에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시스템이라 그건 몰랐던 것이다.

점심을 마치고 3인분을 계산해달라고 했는데 직원이 못 알아듣고 내게 질문을 했다. 그때, 나는 다시 외계어를 들었다. 심지어는 영어 할 줄 아냐는 말도 들었다. 아니, 어쩌다 이런 사태까지.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현금을 인출하려고 ATM에 갔는데 1회 인출액이 1,000루피(약 18,000원)라는 글이 화면에 떴다.  내게 필요한 일만 루피를 찾으려면 무려 10번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 위층에 있는 은행에 가서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사정 얘기를 하니 직원이 한 번만 뽑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계속 10번이라고 우기자 직원이 1층 ATM까지 동행했다. 카드를 넣고 화면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랐다. 그런데 아까와는 다른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0’ 이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1회 인출액이 1000(일천) 루피가 아닌 10000(일만) 루피.

아까는 분명 1,000루피로 보였는데. 

아! 나는 왜 그랬을까? 


부록으로, 내 ‘이불 킥’ 사연을 하나 더 소개하면,

주방에서 빵 반죽 무게를 재고 있었다. 한 덩이에 128-130g이 정량이다. 한 무더기(약 400g)가 남았는데 나는 그 남은 반죽으로 4 덩이를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알아듣고 100g씩 4개를 만들었다. 당연히 그 4개는 다른 것들보다 작았고 그걸 눈치채고는 무게를 잘못 쟀다며 핀잔을 주었다. 졸지에 무게도 못 재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샌드위치 소스가 빵 밖으로 넘치는 게 몇 개 눈에 띄었나 보다. 만들 때는 여러 명이 했지만 하필 그 자리에는 나만 남아 있어서 그것도 옴팡 내가 뒤집어썼다. 

누가 그렇게 했냐고 물었고 나는 누가  했는지 알고 있지만 굳이 말해 무엇하랴.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만들어서 모른다고 했다. 


뭔가에 익숙해진다 싶을 때 꼭 찾아오는 실수와 뒤통수 가격, 그로 인한 자괴감.

‘벽돌 두 장’이 없었다면 나는 998개의 벽돌을 보지 못하고 ‘이불 킥’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벽돌 두 장을 외치며 이 시기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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