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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Dec 22. 2018

2018년 , 그 여름

코이카(KOICA) 일반 봉사단 지원부터 합격까지


러시아에서 전라북도 홍보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코이카(KOICA) 지원서를 마무리했다.

'제출' 버튼을 눌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커피 물을 올렸다.

물이 채 끓기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가족이 응급실에 실려갔고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 대수술을 받아야 한단다.  


나는 고속도로에서도 120킬로미터를 밟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국도에서 나는 그 기록을 깼다.

조금의 틈만 있으면 그 사이를 비집고 이리저리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욕을 했었다. '왜 저리 성질이 급할까?', '자동차 경주 하나?', '얼마나 빨리 간다고 저렇게 위험한 짓을 하지?'

곡예 운전하는 나(차)를 보면서 사람들도 한 마디씩 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곡예 운전하는 차(사람)를 보면 '차 안에 위급한 환자가 탔을 수도', '비행기를 놓칠까 봐'.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를 구하러 가는 의사가 탔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부디 사고가 안 나기를 빌면서.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서 서울 대형 병원으로 전원 되는 상황, 전원 수속을 밟고 서울의 다른 가족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구급차에 혼자 실려 보냈다. 급한 마음에 지갑만 들고 왔고 수술과 입원에 대비한 짐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탄이 비처럼 떨어지는 전쟁터에 혼자 내버려두고 오는 느낌이 이런 걸까.


구급차가 출발하기 직전, 나에게 사이다와 파워 에이드를 사달라고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 음료수들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구급차로 이송되는 몇 시간 동안 혼자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밖을 볼 수도 없고 어디만큼 왔는지도 모르고 옆에는 가족도 없는 암담한 상황.

병원(간병) 생활에 필요한 짐을 챙겨 다음 날 서울에 도착해 보니 얼굴은 반의 반쪽이 되어 있었고 음료수 한 병은 그대로, 한 병은 겨우 몇 모금 없어진 상태였다. 

마지막까지 챙긴 음료수인데 그것마저 먹지 못할 만큼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으리라. 음료수가 많이 닳아있었다면 내 마음이 깃털만큼이라도 가벼워졌을까?.......


간병하는 동안, 병원에서 서류와 면접 합격 소식을 들었다.

힘든 병원 생활을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드디어 퇴원.

정확히 말하면 전원. 집 근처 병원에서 계속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했으니까.

전원 된 다음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3일장을 치르던 중 한국어 교원 시험을 봤고 코이카 면접을 보러 다시 서울로 갔다.

2018년 8월, 나는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긴장과 초조 속에서 살아야 했다.

내게 너무 잔인했던 8월.


다행히 면접에 합격했다. 면접까지 통과하고도  건강검진과 (재검사) 절차가 남아있었고 모두 마친 후에 최종 발표까지 또다시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발표. 3순위로 지원한 베트남이 내 파견국이 되었다.


사실, 1,2순위로 지원한 나라에 비해 베트남은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나라로 합격하고 나니 베트남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첫째, 한국과 가깝다. 하노이, 호찌민 모두 5시간이면  도착.

둘째, 따뜻하다(물론, 뜨거운 날이 훨씬 많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몽골로 파견되었다면 어땠을까? 코이카 단원들끼리는 '냉장고'라 불리는 나라.

셋째, 한국에 우호적인 나라이다. 한류, 박항서 감독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호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넷째, 코이카 단원 파견 국가 중 태국과 더불어 가장 환경이 좋다(치안, 생활, 물가 등).

다섯째, 베트남 사람과 한국 사람은 매우 닮았다. 체구, 생김새가 비슷해서 외국에 와 있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 특히, 지금 살고 있는 하노이에는 한국 사람도 많고 한국 제품과 음식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지점도 여럿 있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몇 년 동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풀리지 않아 자신감이 바닥이었다. 하지만 코이카 단원 합격 소식은 수년간의  마음고생을 모두 보상해주는 듯했다.


2018년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고 내겐 너무 잔인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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