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를 보며
어느덧 봄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벚나무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예년보다 일주일이나 이른 날 벚꽃을 피워냈다. 온 거리가 온통 봄이라 거리 곳곳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sns는 꽃놀이 사진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 초여름 같던 기온은 영하 언저리까지 내려갔고 벚꽃은 언제 활짝 핀 적이 있었냐는 듯 우수수 떨어졌다.
꽃들이 갈길을 잊고 흩뿌리는 데에도 곱게 피어난 새싹들은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한 번 봄을 시작한 나무에게 다시 돌아가는 길은 없다는 듯이, 고요하게 봄비를 맞으며 오늘도 내일도 이파리를 키워내었다. 이미 세상에 태어난 이상 별도리는 없다. 갑자기 추위가 찾아오거나 태풍이 찾아와도 나무는 매일을 살아가며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다. 거기에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오늘따라 여기저기 휘둘리느라 힘들었고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 때문에 손은 얼얼하게 추웠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데 집 앞에서 문득 새싹이 돋아난 은행나무를 봤다. 며칠 전보다 훨씬 많이 자라난 푸른 잎을 보니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나의 삶이 대단하지는 않아도 오늘 하루 내 몫의 일을 하느라 고생했다고, 집으로 돌아온 내게 수줍게 건네는 나무의 위로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을 버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