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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03. 2024

현망진창이지만,

현망진창이 따로 없다. 글에 집중하는 삶을 살려고 카페를 그만 두었는데 공사에, 학교일에 치이는 날들을 보낸다. 이놈의 공사는 신기하게 해도해도 또 할 게 생기는데, 글방 내부공사에서 시작한 게 옥상방수를 거쳐 외벽 방수코팅 작업까지 나아갔다. 이어서 지붕도 해야 하는데… 지갑을 열어두고 사는 기분이다. 이러다 남의 지갑까지 열면 큰일인데 말이지.


바닷마을에서 십 년된 집은 옛날 집이라는 목수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돈과 거리를 두고 살다가도 이럴 때면 영락없이 다시 돈의 중요성을 깨닫고 만다. 알뜰살뜰 모아둔 돈은 그렇게 집 뒤치다꺼리로 몽땅 들어간다. 노후화가 빠른 집이라 생각하면 돈 쓰는 게 아깝고, 내가 살아갈 나의 집이라 생각하면 크게 아깝지가 않다. 마음 씀씀이가 참 중요하다. 삶을 한순간에 비극에서 희극으로, 혹은 그 반대로 바꿔 버리니.


이 정신없는 와중에 틈틈이 머릿속으로는 글방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이 프로그램은 이때 하고, 저 프로그램은 저때 하고, 방식을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처음부터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조금씩 늘려가야지, 근데 내 글은 언제 쓰지. 나는 같이 글을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선택을 그리 반기지 않는 사람이 온갖 선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언제쯤 이 수많은 선택지에서 놓여날까.


아이 학교에서도 저녁에 수업 하나를 진행하게 돼, 그 역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우리 마을은 책 관련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데, 그 사업의 일환으로 그림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수업을 하게 된 것. 사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과 해보고 싶어 머릿속으로 오랜 시간 상상만 해온 것인데,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허락해주셔서 실현하게 되었다. 덜컥 맡긴 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의 세계로 안내하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게 도울지. 머리가 참 복잡스럽다.


바쁜 4월이다. 4월이 이렇게 바쁜 달인지 차마 알지 못하고 일을 잔뜩 꾸미고 말았다. 다음주 중반쯤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면 나도 한숨 돌리게 될까. 커다란 창을 초점 없이 응시하며 가만히 음악에 귀 기울인 채 계절을 가늠하는 시간으로 건너가고만 싶다. 완연한 봄바람이 부는 5월엔 그럴 수 있을까. 스케줄로 빼곡한 다이어리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떠올린다. 내가 선택한 자유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적절히 버무린 일상으로 가야할 텐데.


돌이켜 보면 나는 그저 나의 책상 하나를 갖고 싶었다. 이리저리 떠돌며 유목민 신세를 면치 못하는 내 책들과 노트북의 자리를 찾아주고 싶었는데. 그 옆에 함께 글을 나누는 공간도 살짝 만들어보고 싶었고. 일이 커진 것 같아 두렵다. 커진 책상 만큼 제대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싶어 아찔하고.


남편이 툭 던지는 말이 종종 내 앞길을 터주곤 하는데, 가족이 함께 쓸 공간이라는 말에 부담을 조금 던다. 하교 후 아이들에게도 집중하고 싶었는데… 당장은 그 어느 것에도 제대로 몰입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그토록 돌려버리고 싶던 한 달의 시간 중 절반이 조금 더 지났다. 큰 산은 넘은 거겠지.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잘 집중할 수 없는 날들에 대한 죄책감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런 때도 있는 거라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쩔 도리 없이 그저 흘러가야 하는 때가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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