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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l 09. 2024

제주도라 끊지 못하는 쿠팡, 너무 괴롭다

https://omn.kr/299t7


언론에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죄인 심정이 된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살고 있는 지역 때문이다. 나는 제주도에 산다. 섬에 산다는 말이다. 섬은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곳이다. 배나 비행기를 한 번 더 타야 도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제주는 강남만큼 땅값이 비싼 곳이 아닌데도, 기름값이 전국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거주지 인근에서만 장을 보던 시절을 넘어 인터넷 발달로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들였다. 온세상이 거래처가 된 것이다. 우체국 소포만 있던 시절에서 온갖 택배회사가 범람하는 시절로 건너뛰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런 시대를 살다 11년 전 제주로 이주를 한 뒤 전자상거래가 불편해졌다. 택배비 때문이었다. 육지에 살 때만 해도 웬만한 택배비는 무료이거나 아무리 비싸도 5천 원을 넘지 않았는데, 섬은 그렇지 않았다. 무료배송이라 써 있어도 도서산간 배송비를 추가로 내야만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최소 5천 원에서 1만 원을 배송비로 내야만 하는 것. 물건값보다 비싼 배송비를 치러야 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섬이라는 지역 탓이라는 건 알지만 매번 이런 거래를 하자니 나만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섬에서도 시골에 사는지라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에는 한계가 있었다. 시내로 나가도 육지 대도시만큼 다양한 물건을 만날 수 없으니, 눈길은 자꾸 인터넷 쇼핑몰로 향했다.


배송비만 지불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툭 하면 배송이 지연되는 것. 버뮤다 삼각지대는 택배 배송 경로에도 존재했다. 특정 지역에 물건이 접수되면 몇 날 며칠을 그 지역에만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날씨라도 궂으면 배송은 더 늦어졌다. 계절을 잘못 타면 택배는 열흘이 걸려 도착하기도 했다. 섬에 산다는 건 인내를 배우는 일인지도 몰랐다.


애초에 도서산간 배송을 하지 않는 물품도 있었다. 신선식품의 경우 상하면 소비자가 책임을 지겠노라 선언해도, 업체들은 섬으로 상품을 보내지 않았다. 아무리 홈쇼핑에서 맛있는 음식을 광고해도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가구 역시 배송이 안 되긴 마찬가지. 배송이 되더라도 수십 만원의 배송비를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쿠팡을 만났다, 신세계였다


그런 힘든 시절을 겪다 쿠팡을 만났다. 2020년부터 쿠팡이 제주시에 첫 쿠팡 로켓배송센터를 열고 로켓배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그해 10월에는 서귀포에도 로켓배송센터를 오픈했다). 배송비가 없다니. 섬사람에게는 거의 신세계나 다름 없었다. 배송비를 따로 받지 않는 것도 감사한데 심지어 배송도 다른 택배회사보다 빠르다. 2~3일 정도면 구입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


육지의 로켓배송은 반나절 혹은 하루만에 물건이 배달되지만 제주는 빠르면 이틀, 늦으면 사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육지에 살았다면 이 기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열흘씩 택배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는 섬사람 입장에서 2~3일은 너무나 신속한 배달 서비스였다.


쿠팡은 이후 로켓설치 서비스도 하기 시작했다. 전자제품 뿐만 아니라 큰 가구들을 무료로 배송하고 설치해주는 서비스인 것. 또 다른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소비자가 사겠다 우겨도 배송을 해주지 않거나, 어마어마한 배송비를 내야만 받을 수 있던 물건들을 무료로 갖다주고 설치도 해준다니.


섬사람들은 너도나도 쿠팡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이, 아니 온동네 사람이, 거짓말 조금 보태 온 제주 사람이 쿠팡을 애용하고 있다. 평소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고 있지만 쿠팡 만큼은 끊기가 어려웠다. 섬이라는 지리적 제약이, 시골이라는 소비의 한계가, 나를 자꾸 비윤리적인 소비를 하도록 부추겼다. 어쩌면 이 모든 건 핑계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쿠팡에서는 여러 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2020년 3월 12일 새벽, 경기도 안산에서 쿠팡맨이 새벽 배송 업무 중 사망했다. 2020년 6월 1일 오후 쿠팡 천안 물류센터 조리실에서 외주업체 소속 직원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2020년 10월 12일, 1년 6개월간 쿠팡에서 일해온 일용직 노동자가 사망했다.


2021년 1월 11일, 동탄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50대 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1년 3월 6일 새벽, 쿠팡 구로 배송캠프에서 쿠팡맨을 관리하는 40대 캠프리더가 숨을 거뒀다. 같은 날 쿠팡 송파 1캠프에서 심야 배송을 담당하던 쿠팡맨 한 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2021년 6월 17일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 1명이 순직했다. 2021년 크리스마스 전날, 쿠팡 물류센터에서 50대 노동자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50일 만인 2022년 2월 11일 숨졌다. 2023년 10월 12일, 로켓프레시 배송을 하던 60대 배달원이 새벽 6시에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2024년 5월 28일 쿠팡 로켓배송 일을 한 지 1년 2개월째인 4남매의 아빠 정슬기(41)씨가 자택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심실세동과 심근경색 의증. 과로사의 대표적인 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이다. 정씨는 평소 무릎이 없어지는 것 같다는, '개처럼 뛰고 있긴 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끊을 수 있는 죽음의 고리


제주에 산다는 이유로 그동안 사람이 죽어 나가는 회사라는 걸 알면서도 물건을 구입해왔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 하는 동물'이라고 말한 로버트 하인라인이 떠오른다.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해왔던 시간들이 너무나 부끄럽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합리화해왔던 내 소비가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쿠팡과 거래를 끊으면 이 연쇄적인 죽음의 고리도 끊을 수 있을까.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쿠팡 노동자들이 무릎이 닳도록 뛰고 있다.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본다.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은 온라인에서 주문하지 않기, 쓸데없는 소비 줄이기, 물건을 받을 때마다 감사 인사 하기, 며칠 늦게 택배가 도착해도 너그러이 이해하기.


섬살이로 그나마 변화된 게 있다면 인내다. 이주 초기 택배를 열흘도 기다려본 나는 기다림에 꽤 익숙하다. 물건을 주문하면 이내 잊어버린다. 하루 이틀 늦어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주 조금의 인내와 이해인지도 모른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조금 천천히 받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내와 이해.


아주 작은 그 차이가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지도 모른다. 조금 늦는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잠시나마 편히 숨 쉴 수 있는 시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잠시 아픈 두 무릎을 어루만질 수 있는 귀한 쉼의 시간인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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