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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Sep 13. 2024

패럴림픽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아이

"엄마, 패럴림픽이 뭐야?"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는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아직 작은 녀석이 뭘 알까 싶지만, 줄줄 선수 이름을 나열하거나 경기 규칙을 설명하는 걸 보면 관심 만큼이나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


녀석은 올림픽과 월드컵의 스케줄을 꿰고 있다. 다른 친구들이 게임을 할 때 녀석은 유튜브에서 지난 스포츠 경기 영상을 찾아본다. 올림픽 시즌에는 우리 집 작은 거실이 축구장이 되기도 하고 배드민턴장이 되기도 한다. 주택이니 다행이지 아파트였다면 분명 쫓겨났을 것이다.


이렇게 스포츠를 보는 것과 하는 것을 즐기는 아이는 파리 올림픽이 끝나니 또 4년을 어떻게 기다리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말투라 온 가족이 한바탕 웃음을 지었다. 그런 아이에게 패럴림픽이라는 신세계는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을까. 아이는 경기 스케줄을 알아보라는 둥, 어느 채널에서 방송을 하냐는 둥 캐물으며 나를 그야말로 들들 볶았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검색을 해보니 패럴림픽은 거의 KBS1 채널에서만 중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하루 딱 두 시간. 평일에는 오후 2~4시, 주말은 3~5시. 생방송 경기가 아니라 주요 경기 영상을 편집한 방송이다(찾아보니, 지상파 3사가 패럴림픽을 중계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


수도꼭지 틀듯 틀기만 하면 이런저런 경기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던 올림픽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이는 바로 불만을 토로했다. 저번이랑은 다르게 왜 방송을 잘 해주지 않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결국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이전 올림픽에서도 다양한 경기를 볼 수 없었던 건 인기가 많은 스포츠, 좋은 결과가 예상되는 경기 위주로 방송이 편성됐기 때문이었듯, 패럴림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 방송도 적게 한다고 말이다. 시청률이 높아야 광고도 많이 붙기에 이런 편성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KBS는 공영방송이고 광고가 없는 채널이기에, 그나마 하루 두 시간이라도 편성해 방송하는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아이들은 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현상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나 낮은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에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송 화면 속의 경기장에는 관중석이 가득 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둘째는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TV리모컨부터 찾았다. 그렇다 해도 돌봄과 방과후를 끝내면 보통 하교하는 시간이 오후 3~4시다 보니, 아예 보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음 놓고 두 시간의 경기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이제 끝이니 아이는 또 울상이다. 얼마 보지도 못한 패럴림픽이 끝나 버렸다며 속상해 한다.


아이는 패럴림픽을 통해 골볼, 보치아 등 새로운 경기도 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장애에 대해 알아가는 듯했다. 종종 척수장애가 무엇인지, 뇌성마비가 무엇인지 방송에서 들은 단어들을 곁에 있는 어른인 내게 계속 물어온다.


장애에 대한 관심 생긴 아이


그때마다 나는 충실히 설명을 해준다. 아직 편견이 없는 아이는 단순한 연민의 시선으로 장애인 선수들을 보지 않는다. 그저 나와는 조금 다른, 혹은 조금 불편한 한 사람으로 바라볼 뿐이다. 몸은 좀 불편하지만 한 스포츠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을 쌓은 선수로 인식할 뿐이다.


이따금 휠체어를 타고 있는 선수들은 화장실을 어떻게 가는지, 턱이 많은 도로를 지나기 어렵지는 않은지를 묻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이유가 휠체어가 다니기 불편한 대중교통과 도로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잘 걷고 뛰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유아차를 끌고 다니기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말해주니, 장애인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거리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패럴림픽은 단지 스포츠를 넘어 장애에 대한 인식과 공감도 배울 수 있는 세계적인 이벤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방영 자체를 거의 안 하는 데다 시간대도 너무 한낮이다 보니, 챙겨 보기가 무척 어렵다. 경기를 기다리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이렇게 아쉬운데, 무엇보다 이 순간을 위해 구슬땀 흘려왔던 선수들과 가족들은 얼마나 서운할까.


선수들 각자의 사연, 각자의 장애 서사


선천적인 원인보다 후천적인 원인으로 장애를 얻은 사람이 많은 만큼, 선수들에게는 각자의 서사가 있다.


휠체어 펜싱 플뢰레 카테고리 B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패한 조은혜 선수는 2017년 낙상 사고를 당하기 직전까지 영화계에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낙상으로 척수 손상을 입고 하반신이 마비돼 기존의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단다. 우연히 휠체어 펜싱을 보고 매료돼 장애인펜싱협회에 연락해 운동을 시작하고 패럴림픽 무대까지 밟게 되었다고 한다.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스포츠등급 PTS3) 경기에서 1시간 24분 01초를 기록해 10위를 차지한 김황태 선수의 사연도 남다르다. 두 팔이 없는 김황태 선수는 허리의 힘만으로 수영을 진행해야 했다. 김황태 선수는 2000년 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가 고압선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다. 양가 상견례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7년 째 교재 중이던 김진희씨는 김황태 선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 패럴림픽에서 김진희씨는 경기 보조인인 핸들러로 종목과 종목 사이에 환복을 하는 등 준비 과정을 돕는 역할을 했다.


이런 사연들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만 드러난다. 기사도 포털의 상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데다 TV에서도 일부러 시간을 할애해 전달하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패럴림픽 중계 확대를 위해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관련 기관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개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패럴림픽 중계의 확대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더 포용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같은 곳에서 개최한 것도 나란히 함께 한다는 뜻이 담긴 결과다.


언제쯤이면 패럴림픽도 올림픽처럼 TV만 틀면 볼 수 있을까. 중계를 해보지도 않고 인기가 없을 것이라 단정하는 건 지나친 선입견은 아닐까.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편성을 하는 방송사는 절정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올 수 없는 걸까.


다음 LA패럴림픽 때는 더 많은 경기를 아이들과 함께 시청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감동을 나누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날은 과연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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