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일지, 못다 한 이야기 ②
“힘들면 퇴사해, 설마 굶어 죽진 않겠지!”
퇴사하기로 했다고 하니 만나는 사람마다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정말 귀가 따갑도록 들은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신나게 놀 거라고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표정은 ‘이 미친놈’이었다. 그러면서도 부러운 눈빛이 가득했다. 마흔 넘어 자신 있게 사직서를 던질 수 있는 용기가 그저 부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직할 용기를 내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가장 힘이 되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다.
실은 5월부터 한 달 가까이 불면증이 반복됐다. 처음엔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생각했다. 머리만 대면 잠들던 사람에게 불면증이라니. 그런데 어느 날인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경험을 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공황 초기증상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일이 힘든 건 아니었다.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이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정확하다. 평소와 달리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출근하기 싫거나 손이 떨리는 등의 현상은 쉬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몸은 이미 나에게 경고하는데 이를 모르거나 무시했다가는 돌이키기 힘든 순간을 마주할 수도 있다.
며칠째 잠 못 이루는 나를 보며 아내가 먼저 퇴사를 권했다. 아내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불안이나 걱정보다 잘 될 거라는 긍정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다. 먼저 제안해준 아내가 고마웠지만, 눈앞에 맞닥뜨릴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홑벌이가 되는 순간 이전에 누렸던 삶은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19호봉인 내가 갈 자리가 있을지, 기다림이 얼마나 오래될지 알 수 없기에 기대감은 곧 불안감으로 바뀌는 감정의 파도를 하루에도 수없이 경험했다.
우선 가계부를 열고 지출 품목을 모두 나열한 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출근을 안 할 테니 주유비부터 빼고, 상조회비도 빠지고, 음.. 한 달 용돈도 5만 원으로 확 줄이고(어디 백수 주제에) 이런저런 것을 제하고 나니 대략 100만 원은 세이브할 수 있겠다는 견적이 나왔다. 허리띠 졸라매고 아끼면 어찌어찌 살 수는 있겠다 싶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결정. 그럼에도 모든 짐을 아내에게 지워야 하는 미안함. 무엇보다 세계정세가 어지러운 이 시국에 퇴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그리 크진 않지만, 10년간 차곡차곡 쌓인 퇴직금 덕분이다.
‘신에게는 아직 퇴직금이 남아 있습니다! 걱정 말고 퇴사하십시오!’
마치 영화 속 대사처럼, 내 안의 자아가 속삭였다.
“그래, 그만두자.”
당장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도 1년은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퇴사하기로 마음먹자 모든 게 편안해졌다. 우선 깊이 잠드는 날이 늘었다. 내면 깊이 갈등했던 것들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누구보다 열심히 놀겠노라 다짐했다. 잠도 실컷 자고 책도 읽고 산책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따금 여행도 가면서 살기로 했다.
내 삶의 주인은 나고, 선택의 책임도 내가 지면 된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2022. 7. 퇴사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