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일지, 못다 한 이야기 ⑤
퇴사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놀겠다고 다짐했다.
브런치에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런데….
퇴사를 선언한 지 며칠 만에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평소 나를 잘 아는 사람부터 친분이 없던 사람까지.
게다가 서울, 대전 등 다른 도시에서도 같이 일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연락을 주시는지 참 감사했다.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한편으론 역시 나는 쉴 팔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도, 인천에서도, 가는 곳마다 일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오늘 퇴사하고 내일 다른 곳으로 출근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17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그래서 더욱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 많은 사람의 특징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정말 일을 잘하거나 스스로 일을 만드는 사람이다. 일을 잘하면 조직에서 계속 일을 맡긴다. 무엇보다 책임감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일이 많아도 끝까지 책임지고 어떻게든 과업을 완수해낸다. 맡은 일을 잘할수록 조직은 그 사람을 더욱 신뢰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일이 떨어진다. 그렇게 일에 파묻혀 살게 되고 결국, 지쳐 쓰러지거나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또,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만든다. 주도적인 성향의 사람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늘 바쁘고 일이 많다.
이번에는 정말 다 내려놓고 쉬려고 했다. 그런데 일이라는 놈은 내가 노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나 보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거부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마치 신이 정해 놓은 길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거부하기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열정이 식어 쉬고 싶어서 퇴사를 결정했는데,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고, 가슴 뛰게 하는 일이 내 앞에 찾아온 것이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골방에 들어가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고, 만약 내가 그곳에 간다면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말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일 중독자인가 보다.
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에 푹 빠진 일 중독자다.
2022. 9.
#퇴사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