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일지, 못다 한 이야기 ⑦
10년 만에 면접을 본 곳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우리나라 대표 공기업이다. 그렇다고 내가 공기업의 직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회복지사여서 합격하게 되면 공단이 설립한 공익재단의 직원이 되는 것이고, 재단의 설립 목적에 맞게 사회공헌 사업을 맡게 된다. 공단과 재단은 엄연히 법적으로 다른 기관이다. 삼성, LG, 현대와 같은 기업이 설립한 복지재단도 같은 형태이다. 다만 법적으론 분리되어 있지만,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가림(블라인드, Blind) 채용을 경험했다. 공기업의 블라인드 면접 시 반드시 지켜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이름, 성별, 나이, 가족, 출신 지역, 이전 직장 등을 절대 밝혀서는 안 된다. 자칫 실수로 이름을 밝힐까 봐 속으로 수없이 돼냈다.
“001번 응시자, 면접실로 들어오세요.”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어서 오세요. 거기 앉으시면 됩니다.”
면접 시간은 짧다. 길어야 20분, 이 짧은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면접관에게 보여야 한다. 따라서 첫 질문부터 뇌리에 남는 답변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경쟁의 연속이며, 차별성을 보여야 내가 돋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면접에서 진부한 이야기는 빼고 1분 이내 핵심을 전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 좋다.
“간단히 본인 소개와 이곳에 지원한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어딜 가든 면접의 첫 질문은 본인 소개와 지원한 이유를 묻는다. 이는 국룰이다. 질문과 동시에 모든 면접관의 눈이 내 입에 집중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응시번호 1번 지원자입니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저는 모든 것을 보여야 하고, 면접관님은 누군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짧은 시간에 저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제 진심이 면접관님들께 가닿기를 바라며 소개를 시작하겠습니다.”
포문을 진중하게 열었다. 진심이 가닿길 바란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정말 진심이 가닿길 바랐다.
“누군가 제게 왜 사냐고 물을 때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 사회를 이롭게 만들기 위해 산다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은 제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사명입니다. 저는 17년간 복지 현장 최일선이라 부르는 복지관에서 근무했습니다. 소방대원으로 치면 불을 끄러 가는 사람이고, 의사로 치면 응급실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이 처한 현실과 삶의 애환을 오롯이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저의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더 큰 일에 도전하고 싶어 졌습니다.
특히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이곳의 미션과 비전이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이제 더 넓은 세상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를 좀 더 이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그간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재단을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원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면접이라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지만 진심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첫 질문 이후로도 자신의 강점, 윤리적 딜레마를 겪을 때 대처 방법 등 여러 질문이 오갔다. 면접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마음의 평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안해지니,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흐뭇해하는 면접관의 표정을 봤다.
‘아, 이건 되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