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찬은 한국어입니다 제2화 두부강정
꿔바로우가 아니에요. 두부강정이에요.
두부강정 재료는 두부와 감자전분이에요. 튀김가루가 아니에요.
가: 이거 좀 맛이 없어요.
나: 하하, 제가 요리사가 아니라서…….
그럴 때가 있다. 냉장고 안에 오늘 중으로 꼭 소진해야 하는 식재료가 있는데 대체 이걸로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유독 우리 집 냉장고는 그런 일을 자주 겪는 것 같다. 남편도 나도 평일에는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집에서는 저녁 한 끼 겨우 같이 먹으면 다행이고, 둘 다 입이 짧은 편이라 비슷한 음식을 연달아 먹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 거기에 결혼 후 2년간은 삼 대가 덕을 쌓아야만 될 수 있다는 주말 부부로 지냈기에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를 처리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곤 했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생고기가 남아 있다면 볶음이나 찌개 같이 나름대로 근사한 요리를 낼 수 있으니 반가운 마음마저 들고, 채소류가 남았을 때에는 대충 찢어 예쁜 그릇에 담기만 하면 뚝딱 샐러드가 되니 별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안타까운 점은 모든 식재료가 고기나 채소처럼 융통성 있으면서도 친절한 성품을 지니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집 냉장고 스트레스 유발 1순위는 누가 뭐라 해도 두부였다.
두부. 꼼꼼하게 밀봉되어 있기에 소비기한이 길 것 같지만 의외로 구매 후 일주일 안에 먹어 줘야 하는 녀석.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라서 가격도 쌀 것 같지만, 국산 콩을 고집한다면 생각보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녀석. 한 모보다는 두 모 세트가 저렴해서 꼭 세트로 구입해야만 합리적인 주부가 될 것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게 만드는 영리한 놈. 그렇게 사다 놓은 필요 이상의 두부 한 모는 일주일 후 반드시 난제가 되고 만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두부가 남는 것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고기나 채소만큼은 아니더라도 두부도 꽤나 융통성 있는 친구이니 말이다. 찌개에 넣어 먹을 수도 있고, 조려서 반찬으로 만들 수도 있고, 깍둑깍둑 썰어서 샐러드 토핑으로 올려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편은 나트륨 섭취를 줄일 거라며 웬만하면 찌개를 피하려 하고, 나는 두부조림 만들기를 좀 귀찮아하고, 육식파 부부에게 두부 샐러드는 일단 정말 매력이 없다.
일요일 오후 세 시쯤. 그날도 그렇게 ‘오늘까지 먹어야 하는 두부 한 모 버리지 않고 꼭 먹어 치우는 법’을 고민하던 나는 인터넷으로 두부 요리법을 뒤지기 시작했다. 만듦새도 근사하고 맛도 좋아 보이는 여러 레시피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왔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방법이지만 오늘은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요리들과, 재미있고 건강해 보이지만 나에게는 맛없어 보이는 요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와서 터놓고 말해 보자면 사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두부를 별로 안 좋아하면서도 또 두부를 사 버린 나 자신일 것이다. 그때였다.
“나 배고파.”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던 남편이 무심히 말했다.
“배고프다고?”
“음…… 아니, 그냥 좀 출출해.”
일요일 오후 세 시.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슬슬 배가 꺼져 가는 시각. 저녁 식사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시각. 아직 배가 고프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뭘 먹어 놓지 않는다면 한두 시간 내로 위장에 고비가 찾아올 상태. 그때 그 상태를 우리는 ‘출출하다’고 이른다. 그리고 출출함을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따스한 방법은 바로,
“간식 먹을래?”
“오! 좋아. 뭐 먹을까?”
“두부강정 어때?”
“두부……강정?”
조금 전 레시피를 검색할 때, 흥미가 당겼으나 식사보다는 간식에 알맞은 거 같아서 무심히 넘어갔던 메뉴가 하나 있었다. 두부강정이었다. 마침 남편이 간식을 먹고 싶다고 하니 출출함도 달래 주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는 건 늘 즐거우니 내 사리사욕도 좀 채우고,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며 울부짖고 있는 두부 놈도 먹어 치울 수 있으니 일석삼조였다.
태어나 처음 들어 보는 음식 이름에 ‘그게 맛있을까?’라며 의문스러워하는 남편에게, 나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도 안 먹어 봤으니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지루한 고민의 끝, 드디어 해답을 찾았으니 나는 여기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리.
“이름이 강정이잖아. 닭강정 비슷한 소스로 하면 닭강정 같을 걸?”
두부강정을 만들기 위해 레시피를 다시 차근차근 살피는데, 필요한 재료 중에서 우리 집에 없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일단 요리 도구부터가 달랐다. 내가 본 레시피에서는 요즘 신혼부부들이 많이 쓴다고 하는 가스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 오븐, 전자레인지 기능이 통합된 도구를 활용했는데 우리 집에는 그게 없었다. 요리나 요리 도구의 원리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아무리 여러 기능을 가진 도구라 해도 네 가지 조리법을 한 번에 다 사용하는 건 아닐 테니 그냥 집에 있는 에어프라이어 하나만 쓰기로 했다. 소스야 뭐 매콤 달달하면 될 거니까 집에 있는 양념 재료로 만들고, 파프리카와 피망은 어차피 안 좋아하니까 빼고. 토핑으로 올라가는 땅콩은…… 음…… 남편이 땅콩 넣은 닭강정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만 말 안하면 모를 테니 통깨로 대체하기로.
도마 위에 키친타올을 두세 겹 깔고 그 위에 두부 한 모를 통째로 올린다. 두부 위에도 키친타올을 두어 겹 올려준 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르며 물기를 뺀다. 동시에 깨닫는다. 그렇지. 이래서 내가 두부조림 만들기를 귀찮아했던 거였어. 대부분의 두부 요리는 이렇게 두부의 물기를 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두부에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양의 물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키친타올을 여러 번 갈아주며 같은 작업을 참을성 있게 반복해야 한다. 이러면 물기가 좀더 빨리 빠질까 싶어 손바닥에 힘을 조금만 세게 줘도 금방 으깨져 버리니 힘 조절에도 신경 써야 한다. 별 맛도 없으면서 되게 귀찮게 하네. 에휴, 누굴 탓하겠어. 다 내 탓인 걸. 이런 생각의 흐름을 다섯 번쯤 겪다 보면 뽀송하지는 않아도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는 물기가 빠져 있을 것이다.
키친타올을 모두 걷어낸 후에 두부를 깍둑썰기한다. 깍둑썰기는 말 그대로 재료를 깍두기 모양의 직육면체로 썬다는 것이다. 요리 초보에서 경력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귀여운 깍두기 모양으로 쉽게 썰 수 있어서, 칼을 다루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남아 있는 나도 레시피북에서 ‘깍둑썰기’라는 단어를 보면 바로 반가워지고 괜히 자신감이 샘솟는다. 두부처럼 말캉한 식재료라면 더더욱 쉽게 깍둑 썰 수 있다. ‘깍둑’이라는 부사가 소리가 아닌 모양을 흉내낸 단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손가락을 다칠 염려 없이 신나게 팡팡 연이어 썰다 보면 귀에서 꼭 깍둑 깍둑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참 재미있다.
두부 한 조각의 너비는 2.5센티미터에서 3센티미터 정도면 적당하다. 그보다 작으면 식감이 잘 느껴지지 않고, 그보다 크면 한입 간식거리로는 실격이다. 과자로서의 강정이든 닭강정이나 두부강정 등 음식으로서의 강정이든, 바삭하고 한입에 들어오는 먹거리라는 이미지가 같으니만큼 한입 크기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이제 강정에 튀김옷을 입힐 차례다. 찬장에서 조리용 또는 식재료 보관용으로 쓰이는 만능 투명 비닐 봉투를 한 장 꺼낸다. 튀김가루는 시중에 제품으로 파는 튀김가루나 부침가루, 각종 전분가루 등 어느 것이든 괜찮다는 말에 또 찬장을 마구 뒤져 보았는데 우리 집엔 감자전분가루만 딱 한 봉 있었다. 왠지 시중의 튀김가루를 사용해야 더 바삭바삭하고 맛있을 것 같아서 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감자전분을 두껍게 입히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봉투 입구를 벌리고 그 안에 감자전분을 듬뿍 넣는다. 밥숟가락으로 한 스푼, 두 스푼, 세 스푼…… 한 대여섯 스푼 넉넉히 넣어야 튀김옷을 균일하면서도 도톰하게 입힐 수 있다.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둔 두부 조각들을 봉투 속으로 후두둑 떨어뜨린다. 전분가루가 이리저리 휘날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봉투 입구를 손으로 단단히 틀어쥔 후, 두부 표면에 튀김옷이 고루 입혀질 수 있도록 마구 흔든다. 중간중간 봉투를 열어 확인을 해 봤을 때 튀김옷이 유독 입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애쓰지 말고 그냥 전분가루 한 스푼 더 넣으면 된다.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전분가루 아까워 하지 말고 팍팍 쓰기. 튀김옷이 너무 두꺼워서 이거 좀 텁텁하겠다 싶을 때까지.
에어프라이어에 종이호일을 한 장 깐 다음, 그 위에 전분옷을 입은 두부 깍두기 군단을 약간의 간격을 두고 줄세운다. 바삭하게 잘 튀겨질 수 있도록 두부조각 상단마다 식용유를 조금씩 흘려 놓는다. 에어프라이어 문을 닫고 180도에 10분. 바삭함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뒤집어서 5분 더 돌린다. 에어프라이어가 없을 경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튀기듯 익히다가, 튀김옷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면 설렁설렁 볶아 주면 된다.
에어프라이어가 대신 조리를 해 주는 10분의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다. 10분은 휴대폰을 보며 흘려 보내기엔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반대로 강정 소스를 만들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칠리소스 3큰술, 토마토케첩 1큰술, 고추장 1큰술, 올리고당 1큰술, 맛술 1큰술, 다진마늘 0.5큰술, 간장 0.5큰술을 소스볼에 담아 잘 섞어 놓는다.
에어프라이어의 역할이 끝나면 널찍한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나서 준비한 소스를 넣고 약불로 끓인다. 소스가 살짝 끓어오르는 것을 확인한 다음 바삭하게 튀겨진 두부를 모두 팬에 넣고 빠르게 뒤적인다. 어릴 적 자주 찾던 닭강정 가게의 주인 아저씨가 그러했듯, 양손에 나무주걱을 하나씩 쥐고 뒤적 뒤적 양념을 입힌다. 완성된 두부강정을 접시에 옮겨 담는다. 두부강정은 빨간 색감이니 까만색 접시에 담으면 훨씬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땅콩이 없으니 통깨를 솔솔 뿌린다. 검은깨도 함께 뿌리면 좀더 신경 쓴 느낌이 난다.
올리고당을 넣어 표면에 윤기가 차르르 도는 예쁜 두부강정. 네모 반듯한 균일한 크기는 단정한 인상을 주지만, 튀김옷 덕분에 모서리가 각이 져 있지 않고 동그래서 또 귀여운 매력이 있다.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못 먹겠어, 말하지만 사실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하는 것은 주재료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두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오빠, 먹어 봐.”
달달한 양념 냄새가 퍼지는 동안 출출함이 배고픔으로 바뀐 남편은 주저하지 않고 제일 위에 놓인 두부강정을 집는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그의 눈동자를 가만히 살핀다. 눈빛에 의혹이 없는 걸 보니 양념치킨 비슷한 냄새 덕분에 맛봉오리의 경계를 허문 모양이다. 턱이 저작운동을 하며 오르내리길 두어 번. 곧이어 들리는 상쾌한 소리.
“와 진짜 맛있다.”
맛있다는 평 하나에 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양념 재료에 설탕이 들어갈 경우 알갱이가 섞이기만 할 뿐 쉽게 녹지는 않을 때가 많다. 그때 온수를 살짝 넣어 주면 딱딱했던 알갱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르르 녹아 내린다. 그런 점에서 맛보는 사람의 좋은 평은 꼭 따뜻한 물 같다. 요리 과정에서 느낀 사소한 의문이나 피로 같은 것들이 맛있다는 말 한 마디에 싹 녹아 내리니까 말이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어, 그런데 이게? 맛있어? 두부인데? 진짜 맛있을 수가 있어?
얼른 젓가락을 들어 두부강정 하나를 포크처럼 콕 집어 올린다. 한입에 쏙 넣어 천천히 씹어 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식감에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인다. 제아무리 강정의 이름을 달고 있다고는 해도 두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컹하고 축축하고 좀 텁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씹는 순간 미세하게 느껴지는 바삭함, 그리고 바로 뒤이어 찾아오는 찰기 있는 튀김옷. 집에 유일하게 있던 감자전분가루를 두껍게 입힌 덕분에 나온 쫀득하고 찰기 있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처음 생각대로 튀김가루를 사용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식감. 거기에 매콤하지만 달달하고, 조금 새콤하기도 한 끈적한 소스. 부드럽게 무너지지만 결코 기분 나쁜 축축함이 아닌 산뜻한 촉촉함으로 다가오는 말캉함. 열심히 눈을 굴리며 생각한다. 분명히 어디에선가 먹어본 적 있는 그런 맛이다.
“와, 이거 꿔바로우 아니지?”
“진짜 꿔바로우 같다.”
“정말. 오빠, 이거 꿔바로우 아니야. 진짜 아니야.”
늘 맛이 없다고 생각했던 두부를 처음으로 만족스럽게 먹으며 ‘꿔바로우 아니야. 진짜 아니야.’를 되뇌다 보니 학창시절에 엄마와 코스트코에 갔을 때의 일화가 떠올랐다. 큰 쇼핑카트에 식재료들을 이것저것 담다가, 유난히 예쁘게 생긴 버터 하나가 눈에 띄었다. 레몬색에 가까운 샛노란색 플라스틱 용기에 파란 글씨로 크게 ‘Butter!’라고 쓰여 있는 제품이었다. 다른 버터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서 바로 카트에 넣었다. 나중에 집에서 식빵에 그 버터를 발라 먹다가 너무 달고 맛있어서 다시 보니 제품명은 ‘Butter!’가 아니었다. 상단에 작게 쓰인 글씨까지 함께 읽으며 파악한 풀네임은 다음과 같았다. ‘I can’t believe it’s not Butter!(이게 버터가 아니라니, 믿을 수가 없어!)’ 알고 보니 그 제품은 버터가 아니라, 발림성과 풍미를 좋게 한 식물성 마가린이었다. ‘Butter!’의 진짜 정체를 알고 나서 엄마는 내가 그걸 꺼낼 때마다 버터도 아니니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버터와 마가린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버터는 지방이 많아 몸에 안 좋은데 이건 버터도 아닌 데다가 맛도 좋으니 건강에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히죽거리며 답했다. 왜, 이거 맛있어. 이거 버터 아니야. 버터 아니야.
돌이켜 보면 ‘꿔바로우 아니야. 진짜 아니야’를 자랑스레 말할 때에도, ‘버터 아니야’를 외칠 때에도 나는 방긋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다’는 분명 부정을 할 때 사용하는 말인데도 뭔가 긍정적인 의미로 써왔던 것이다. 그럼 다른 ‘아니다’들도 그러한가?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는 ‘아니야’, ‘아니에요’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쭉 생각해 보면, 의지를 가로막는 벽의 이미지와 함께 뭔가 무섭거나 속상한 느낌이 앞선다. 애기야, 그거 먹는 거 아니야. 김 대리, 기분 나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윤 선생님, 경력자가 아니셔서 아쉽게 됐습니다……. 몸을 잔뜩 위축시키고 손을 내젓는 모습의 ‘아니야’도 있다. 언니, 오늘 너무 예뻐요! 에이, 내가 뭘. 아니야……. 정 주임, 이번에 정말 수고했어! 아유, 부장님, 아니에요……. 거절이나 부정의 의미를 띄고 있을 때나 겸양의 미덕을 보일 때나, 한국 사회에서 ‘아니다’는 아무튼 양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닌 듯하다.
재미있는 건 이런 모습이 1급 한국어 수업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1급 학생들은 한글의 자음 모음을 거의 일주일에 걸쳐서 배운다. 학생들은 보통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경우가 많고, 한국어로 하루빨리 말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한글을 공부하는 첫 주 후반부에는 좀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잦다. 지루한 한글 주가 지나고, 그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한국어 문장은 다름 아닌 인사 표현들이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 안녕히 계세요.’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이니만큼 인사 표현을 공부할 때 학생들의 눈빛은 아주 반짝거린다.
줄줄 읽기만 해도 재미있는 인사 표현 중에서도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표현이 바로 ‘아니에요’라는 사실이 한국인인 나에게는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인사 표현의 하나로 등장하는 ‘아닙니다’는 상대방이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만능 대답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대체 이게 뭐가 재미있냐고? 그건 다 내가 잘 가르치기 때문이다. 헤헤.
“(학생의 발을 밟는 시늉을 한 후, 두 손을 싹싹 빌며) 아이고, 니키 씨. 죄송합니다.”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아.닙.니.다.”
불과 5분 전에 한글을 막 뗀 친구들이기 때문에 백이면 백 저렇게 딱딱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나는 호들갑을 떨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려 준다. 그렇게 로봇처럼 말하면 상대방은 화가 안 풀렸다고 생각해 걱정할 테니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억양에 높낮이를 주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직접 시범을 보인다. 너울이 일렁이는 모양으로 손을 내저어 가면서.
“에이~ 아닙니다아아~”
선생님의 시범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은 웃음소리로 가득찬다. 한 명씩 돌아가며 시켜 보면 처음엔 부끄러워하던 학생도 금방 신이 나서 한국인 아저씨 같은 억양으로 완벽하게 ‘아닙니다’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짝 활동으로 인사 표현을 연습하는 시간에 학생들을 슬쩍 엿보면, 저마다 ‘아닙니다’를 말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서 정말 귀엽다.
인사 표현을 공부한 이후에는 ‘저는 레오입니다. 저는 브라질 사람입니다.’처럼 긍정문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긍정문을 학습한 다음에는 ‘저는 레오입니다. 미국 사람이 아닙니다.’와 같이 부정문으로 소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긍정문보다는 부정문을 훨씬 재미있어 한다. ‘레오 씨는 학생입니까? - 네, 저는 학생입니다.’는 조그마하게 대답하다가도 ‘레오 씨는 선생님입니까?’하고 물으면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억양을 신경 쓰며 ‘아니요~ 저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학생입니다.’ 이렇게 답하는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은 왜 ‘아닙니다’를 그토록 재미있게 공부했던 걸까? 언어문화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접근하는 방법을 살짝 다르게 했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두부처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재료도 꿔바로우처럼 다채로운 맛과 식감을 가진 음식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이건 요리의 자유 덕분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아니에요’ 부정문에 딱딱함과 속상함을 남길 것인지, 미소와 긍정을 남길 것인지는 생각과 선택의 자유에 달려 있다.
요리가 매 단계마다 요구되는 요리사의 선택이 모여 완성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매 순간마다의 생각과 선택들이 모여 무언가 하나된 것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생의 끝에 내가 빚어낼 것이 그냥 두부일지, 우연히 사용한 감자전분 덕에 꿔바로우 같아진 두부일지, 그것도 아니면 속아서 산 맛있는 가짜 버터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것들이 내 부엌에 존재하고 지금 요리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만큼은 잊지 않고 살아가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어느날 남편이 내가 만든 요리가 좀 별로라고 하는 날이 온다면, 양 어깨를 쫙 편 채 우렁찬 목소리로 억양에 신경을 쓰며 이렇게 답하려 한다.
“하하, 미안! 요리사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