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 풀어 읽기 01
01. 공간 불평등 (Spatial Inequality)
도시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 것일까요? 공간을 지켜보는 시각에 따라 도시의 범위와 정의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행정적인 구분되는 도시의 정의마저도 국가 또는 지역마다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를 만들어 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제 어릴 적 기억 속 미술 시간에 숙제로 해가던 '우리 동네' 또는 '도시' 그림들을 떠올리면, 매번 높은 빌딩과 네모난 아파트 그리고 공장 등을 그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마 그런 이미지들이 제가 살았던 신도시의 모습을 가장 잘 대변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인지하는 도시의 모습은 경험하는 범위에 따라 많이 다를 것입니다. 그때 당시 같은 반 친구들마저도 각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의 모습을 그렸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합리성 또는 인식의 범위 안에서 묘사 또는 설명하니까요. 그래서, 도시계획 풀어읽기라는 큰 주제의 첫 글로 공간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는 도시를 조금 더 넓혀서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혹은 쉽게 만나지 못했던 그런 공간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공간 불평등은 우리가 인식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공간적 차원으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사실 딱히 새로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심지어 BC400 년도의 플라토 마저도 부자와 빈자로 대비되는 도시에 대해 묘사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2400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이러한 공간 불평등은 사리지지 않았고,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한국의 실상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달동네로 대변되던 열악한 주거지가 그저 고시원과 쪽방 또는 비닐하우스촌으로 치환되었을 뿐, 그 정도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불량주거와 거주민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파편화되어 인지되기 힘들어진 것뿐일지 모릅니다.
사실 이 글은 앞서 말한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러한 상황들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먼저 이러한 문제들을 겪었던 예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해 인식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에 쓰는 글입니다.
다시 학문적 배경을 살펴보면, BC400년도에 이야기되었던 이 공간적 불평등은 19세기 말에나 돼서야, 학문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Du Bios와 Eaton (1899)의 연구였던 The Philadelphia Negro: a social study를 통해 필라델피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열악한 생활을 전하는 것으로 공간 불평등과 원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됩니다. 높은 임대료와 좋지 못한 주거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도심 내부의 불량 주거에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숙련 노동자들이 일을 할 수 있었던 단순 서비스업들이 대부분 도심 내부에 위치하였고, 통근 비용과 잦은 이직을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높은 밀도의 도심 내 주거 지역에 교육 및 위생 시설에 대한 공급이 매우 부족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았던 임대료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또는 다음 세대를 위해 저축 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였으며, 열악한 공공재들은 교육에 대한 기회를 박탈하고, 이러한 지역을 더욱더 빈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차례로 20세기 중반, 2차 세계대전 이후 진행된 도심공동화 (suburbanization)와 맞물려 이러한 도시가 공간적으로 파편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Wacquant & Wilson, 1989). 여기서 말한 파편화란 도시가 공간적으로 구분되는 현상 (segmentation)을 말하는데, 빈자와 부자로 구분되는 아래와 같은 현상을 말합니다. 아래는 제가 미시간의 디트로이트에서 찍은 사진인데, 왼쪽과 오른쪽은 10km가 채 떨어져 있지만, 서로 확연히 다른 주거환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공간적 파편화 자체를 사회적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동질적인 그룹과 모여 살기를 원하고 이를 통해 이질적인 그룹 간에서 생길 수 있는 충동들을 줄여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Knox & Pinch, 2010).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공간적으로 구분되는 현상은 사회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과 공동체적 합의를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인종 차별등의 사회문제를 단순히 공간적 문제로 풀어 설명한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 일 수도 있으나, 지난 수십 년 간 가속화된 공간적 구분과 이에 따른 공공재의 불균형적인 배분은 공간적 구분을 통해 사회경제적 구분 또한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 재산세를 통해 교육시설, 치안시설 등의 사회 서비스가 공급되는 만큼, 열악한 주거 지역은 지속적으로 열악한 서비스를 공급받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공간적으로 구분된 도시는 지속적인 불평등의 양산으로 하여금 부의 불평등 또는 사회적 혜택을 불평을 야기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한된 인식범위로 하여금 시민들의 문제 인식에 대한 기회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는 우리 도시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한 바와 같이 그동안 달동네가 우리 시야에서 없어졌을 뿐, 여전히 소외받는 우리 이웃들은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촌 등지에 계십니다. 물론 미국과는 많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기존의 군락으로 존재하던 달동네 또는 무허가 주거촌들이 파편화되면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인식되지 않는 곳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 도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공간 불평등은 소득으로 구분되는 주거의 질뿐만 아니라, 늘어나는 이주 노동자로 인해 인종적인 구분 또한 앞두고 있습니다. 공간적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양산시키고 있는 미국을 사례를 염두하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문제를 인식하고 접근해야 되는지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문헌:
Du Bois, W. E. B., & Eaton, I. (1899). The Philadelphia Negro: a social study: Published for the University.
Knox, P., & Pinch, S. (2010). Urban social geography: an introduction. New York: Routledge.
Wacquant, L. J., & Wilson, W. J. (1989). The cost of racial and class exclusion in the inner city. 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501(1), 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