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싫지 않은 평행선도 있답니다.
늦잠을 잔 평일 아침이면 벌어지는 실랑이가 있다. 늦어서 밥을 먹고 가지 않으려는 나와 어떻게든 밥을 꼭 먹여 보내겠다는 할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밥은 먹고 갈만큼은 여유롭게 일어났지만 이상하게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옷만 겨우 입고 나갈 정도로 늦게 일어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할머니와의 귀여운 실랑이가 벌어진다.
언제는 내가 과일을 잔뜩 먹어 밥을 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부른 날이었다. 할머니도 가끔 그러시기에 오늘은 별 말씀 안하시겠지 싶었다. 하지만 본인은 집에 있으니 그럴 수 있어도 일하러 가는 나는 꼭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게 할머니의 철칙 , 또 실랑이가 벌어진다. 일이 신경쓰여 예민할 때는 옛날 분이라서 어쩔 수 없나보다 싶다가도 뒤돌아 서서 출근을 하면 할머니의 조건없는 사랑을 마음 가득히 느끼곤 한다. 그래서 할머니와의 평행선은 싫지가 않다. 마치 같은 극의 자석을 붙여놓은 마냥,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은 크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찰싹 붙을 순 없다. 하지만 애정하는 마음이 큰 만큼 좁혀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할머니의 일 욕심이다.
내가 출근할 때 할머니한테 꼭 하는 말이 있다. ‘할매, 오늘은 일하지 말고 쉬어!’ 그럼 어김없이 대답이 돌아온다.‘오야, 할 일도 없어. 잘 다녀와라’
거짓말.
우리 할머니는 눈 앞에 보이는 일을 하러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더 앓아 누우실 스타일이다. 김장철은 두말하면 잔소리, 매실청 담글 철이면 꼭 담궈야 한다. 그러다 몇 해 전에는 가족들이 모두 출근한 오후, 혼자 간장을 담그시다가 허리를 심하게 삐끗하셨지만 그것조차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그 이후부터 이 대화는 내 출근길에서 빼먹을 수 없는 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조금만 쉬엄쉬엄하시면 좋겠는데, 가족들이 출근할 때 할머니는 부디 퇴근을 하시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돼서 할머니는 가족들과 똑같이 일을 한다. 할머니의 8시간은 집안일로 가득차고 그 동기는 가족들이 할머니의 음식을 먹고 '맛있다'는 한마디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한 이 평행선 역시 좁혀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이 대화는 반복될 것이다.
‘할매, 오늘은 일하지 말고 쉬어!’
‘오야, 할 일도 없어. 잘 다녀와라’